매일신문

[문화칼럼] 외국어와 믿음

외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인 필자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어려운 외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그것은 이 언어를 접해본 적도 없는 학생들을 4년이라는 단기간에 언어를 아주 잘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어라는 것은 다른 학문 영역과는 달리 어중이떠중이가 별 쓸모가 없는 듯하다. 언어는 내 것으로 완전히 만들었을 때에 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언어는 완벽하게 정복하지 않을 것이면 처음부터 배울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첫 시간에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유학할 때에 러시아인 교수로부터 들었던 외국어를 잘 배우는 방법이다.

외국어를 잘 배우는 첫 번째 방법은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의 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는 듯하다. 특강을 만들어서 방학 중에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몇 만원을 내고 특강을 들을 때에는 처음에 잘 나오다가 뒤로 갈수록 결석 일수가 잦아지게 된다. 하지만 몇 십만원을 받을 경우에는 결석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진다. 역시 본전 생각이란 것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우리 과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는 대학생들은 대학교 등록금이 만만치 않은 것을 생각하면 이 첫 번째 방법은 잘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하나의 작은 문제가 있다면 그 몇 백만원을 자신의 돈으로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해결하는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본전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자신이 일해서 번 피 같은 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공부한다면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까워서 결석도, 지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외국어를 잘 배우는 두 번째 방법은 좋은 선생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했다 하더라도 좋은 선생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한테나 배우려 하지 않고 최고의 선생을 고른다. 연봉이 사람마다 다 다르고 각 분야에서 경력자가 우대받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타고났든지, 경험을 통해서 습득했든지 간에 선생의 가르치는 노하우는 큰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여기에 하나의 조건을 더 붙이고 싶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는 믿음이란 이것이 왜 그러한지, 그리고 이것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학생은 선생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에게 믿고 따라올 수 있는 근거를 먼저 선생이 제공해야 한다. 좋은 선생은 학생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먼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영역을 슬쩍 보여줘야 한다. 때로는 학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까지도 보여줘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선생은 공인이 되는 것 같다.

제자가 철저하게 스승을 믿어버리면 그 스승은 자신의 제자를 버릴 수가 없게 된다. 그리하여 스승은 제자를 가르쳐서 대학에서 내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제자의 앞날까지도 책임지는 사람이 되게 된다. 앞뒤 가리지 않는 제자의 믿음은 스승을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비단 외국어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닌가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 이웃 사이, 친구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 그 어디에서도 이 믿음은 윤활유의 역할을 해준다.

외국어 하나 정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미묘한 여자를 정복하고, 남자를 정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필자는 학생들을 이끌어간다. 왜냐하면 러시아어가 결코 만만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돈을 투자한 상태에서, 그리고 훌륭한 선생을 이미 만났다면 그 선생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외국어 공부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자세 역시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정막래 교수(계명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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