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주(68)씨는 40여년 택시운전 외길을 걸었다. 1970년대 전국에서 개인택시는 300여대. 대구 10대, 경북 15대에 불과했다. 군에서 운전을 배운 이씨는 제대 후 1967년 크로나 1대를 마련, 택시회사에 지입차로 등록해 사실상 차주, 형식상 법인택시 기사로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뒤인 1977년 개인택시제도 부활 뒤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인택시 면허를 받았다.
'안전운전'은 이씨의 가장 큰 모토다. 90년대까지 단 한 차례의 사고도 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당시 내무부장관이 주는 10년 무사고 표창과 메달을 두 차례 받았다. 2001년 가벼운 접촉사고, 2006년 오토바이와의 추돌사고 등 2번의 사고가 42년 운전경력에 흠이라면 흠이다. 크로나-브리샤-포니2-세븐틴-로얄 디젤-스텔라-쏘나타-다이너스티 등 운전경력만큼이나 차량도 다양했다.
이씨는 "70년대, 80년대까지만 해도 택시로 자녀들 학비와 생활비를 대며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었다"며 "IMF 때부터 어려웠는데, 요즘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수입이 꽤 짭짤했던 장거리 운전이 크게 줄었고, 합승은 아예 사라진 것.
"무인 과속단속기가 생겨나 과태료 7만, 8만원을 내고 나면 하루 공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래도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엄격한 교통단속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산모 태우고 병원 가기 ▷야간 폭행사건 112 신고하기 ▷장애우 모시기 등이 운전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이라고 했다.
이씨는 "밤이나 새벽에 골목길에서 집단폭행이 이뤄지면 직접 나서기는 어려워도 꼭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승객 문화와 관련, "30년 전과 비교할 때 여유가 많이 없어졌다. 지름길로 가고 있는데도 '이쪽으로, 저쪽으로' 하며 보채고, 심지어 법규 위반을 부추기며 재촉하는 승객들도 많다"고 했다. 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택시 안에서 농담을 주고받기도 힘들다"며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감도 최고조인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경제가 안정될 때는 여유가 있어 택시 안도 부드럽고 즐거운 공간이었다"며 "어렵지만, 삶의 여유를 갖자"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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