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을 벌인 한 쌍이 택시를 탔다. 남편은 앞좌석, 아내는 뒷좌석에 올랐다. 입을 꾹 다물었다. 분위기가 싸늘했다. 택시기사가 말했다. "손님 어서 오세요. 어? 오늘은 '남남북녀'가 타셨네요" 아내는 "무슨 말이냐"고 했다.
"집에서 '서로 잘 낫다'고 우기면서 싸움을 벌인 것 아닌가요?"
아내는 "부부싸움을 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하자, 기사는 "척하면 삼천리 아니겠느냐"고 했다. 아내는 "안 그래도 딸 혼수 문제로 다퉜는데, 기사님에게 들켰다"고 부끄러워했다.
기사는 말을 이었다. "대구에서 1등 신부감이 다니는 학교가 어딘지 아느냐"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초등학교는 '아양초교', 고교는 '신명여고', 대학은 '옛 효성여대'이다. 아양과 애교를 잘 부리고, 신명을 낼 줄 알고, 효성이 지극하기 때문이다"는 것.
부부가 함께 싱긋이 웃었다.
"결혼 약속 뒤엔 예식장을 잘 골라야 한다"며 예식장 홍보에 나섰다.
"신랑이 대접받기 위해서는 '황제예식장', 신부가 왕비나 공주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궁전예식장', 가문의 명성을 위해서는 '명성웨딩', 하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귀빈예식장'이다. 예식장 고르기가 아리송할 때는 '알리앙스 예식장'으로 가면 된다"고 한다.
부부는 기사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혼수나 물건을 사러갈 때도 잘 살펴야 합니다"
홀로 갈 때는 '원마트', 둘이 갈 때는 '이마트', 셋이 갈 때는 '삼성 홈플러스', 넷이 갈 때는 '디마트, 다섯 명이 갈 때는 '오케이마트'다.
한바탕 웃은 뒤 목적지에 도착한 부부는 '좋은 하루 되라'는 택시기사의 인삿말에 '고맙다'는 말로 응대했다. 팔짱을 끼고 걷는 부부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택시기사 정수완(65)씨는 대구의 웃음전도사다. 종종 손님들에게'배꼽 잡는 택시'라고 적힌 명함을 건넨다. 약 10년째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크게 힘들지 않다. 특히 찌푸린 손님들이 환하게 웃거나, 자신의 우스갯소리에 시원스레 응대해주는 손님들이 많은 날은 피로가 싹 가신다.
손을 흔들어 택시를 세운 손님에게 말을 붙인다. "손님,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면 택시요금은 두 배지요. 하지만 손님은 다섯 손가락을 펴고 두 번 흔들었으니, 요금은 열 배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장 보러가는 주부를 태우면 또 이야기를 풀어헤친다. "아주머니 시장 가세요? 어느 시장 가세요?"
여러 가지를 두루두루 살 때는 '두류시장', 한 종류를 많이 살 때는 원대로 주는 '원대시장', 소원을 빌려면 '칠성시장', 출세하려면 '관문시장'을 통과해야 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평화시장'에 가야한다. 또 물건 파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시장은 손님들이 다 사주는 '다사시장'이다.
학생 손님을 맞을 때는 "의자 없이 서서 공부하는 학교는 '입석중학교', 영어 잘하는 '혜화여고', 중국어 잘하는 '오성고교', 청소 잘하는 '정화여고', 애국가 잘 부르는 '남산고교', 서쪽에 교문을 두고 동문서답하는 '동문고교' 등이 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아파트로 향하는 손님에겐 "세계에서 가장 큰 아파트는 '만평아파트', 밤낮으로 벗고 지내는 '에덴아파트',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은 '안심주공'이다. 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효성타운', 신랑 신부가 살고 싶은 '잉꼬맨션', 처녀 총각이 좋아하는 '호반맨션', 노처녀 노총각이 좋아하는 '까치아파트',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공원아파트', 고시생들이 많이 찾는 '장원맨션'도 있다"고 한다.
정씨는 웃음이 많이 사라진 요즘 세태를 안타까워한다. 많이 웃어야 젊어지고, 덩달아 삶도 풍요로워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씨에겐 '비밀노트'가 있다. 웃음보따리를 위한 재료이자, 비밀병기다. 비밀노트에는 다름 아닌 대구의 지명, 상호, 숫자 등이 빼곡하다. 손님이 없어 정차 중일 때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독특하고 특이한 상호나 지명을 메모한다. 그의 우스갯소리에 음담패설은 없다. 대신 친근하고, 독창적이다. 대구의 지명과 상호와 숫자를 바탕으로 직접 만들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손님들의 즐거운 하루와 자신의 보람을 위해 웃음보따리를 풀어내며 대구시내를 달리는 정씨를 만났다.
-웃음을 주게 된 계기는.
"25년 전 대전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에게 농담을 건네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30분가량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썰렁했고, 한편으로 무섭기도 했습니다. 택시를 시작하면서 그때 생각이 났지요"
-손님들 반응은 어떤가요?
"열에 아홉은 장단을 잘 맞춰줍니다. 대다수 처음에는 황당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다 이내 썰렁한 농담이란 것을 알아채고 친근하게 다가섭니다. 내릴 때는 서로 인사하며 명함을 건네기도 합니다"
-웃음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단순합니다. 아파트, 병원, 시장, 상점 등을 보고, 그 이름에 이야기를 덧붙여 시리즈로 엮어내지요. 대구 사람들이 주고객이니까, 대구의 지명 등에서 딴 이야기가 친숙한 것 같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잖아요. 썰렁한 얘기도 자주 하다 보면, 강약 조절과 스토리 연결이 돼 그럴싸합니다"
-손님들에게 바라고 싶은 점은.
"택시를 탄 동안만이라도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가끔 '한 달 만에 마음껏 웃어본다'는 손님 얘기를 들을 때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웃을 일이 그만큼 없겠구나'하는 생각, 요즘 불경기와 서민생활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고요. 그럴수록 사소한 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가슴을 펴야한다고 봅니다. 웃어서, 대화해서 나쁠 게 있겠습니까"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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