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유머] 犬公天下(견공천하)

인류가 개(犬公)를 가축이나 애완동물로 여긴 이래 최고의 '개 팔자 상팔자' 시절은 아마도 17세기 후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때였을 것이다. 5대 쇼군(將軍)이었던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는 대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하자 당대의 고승 류코(隆光)에게 해법을 구했다. 류코는 전국시대 통일과정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한 선조들이 저지른 수많은 살생의 업보 때문이라며 '살상금지령' 공포를 권했다.

쇼군 쓰나요시가 마침 '개띠'였던 까닭에 이 '살상금지령'은 '동물애호령'으로 비화되면서 특히 개에 대한 광적인 보호지침으로 변질되었다. 개를 학대하거나 잘못 건드렸다가는 목숨을 잃거나 중형을 피하기 어려웠다. 명실공히 '견공천하'(犬公天下)가 도래한 것이었다.

'개님'이라는 호칭이 붙고 '개 호적대장'까지 생기자, 언제 닥칠지 모를 '개 재앙'이 두려워 아예 "개는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했다. 사람들은 개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에도(江戶·도쿄의 옛이름) 중심지에는 유랑하는 개를 수용하기 위한 '개 전용 아파트'까지 생겼다. 犬公들이야 이런 호시절이 또 있었을까.

일본인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 일본말에 '개'와 관련된 속담이나 숙어가 거의 없는 것도 막부시대의 이 같은 촌극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개망신' '개구멍' '개××' 등 개를 소재로 한 은어나 비어가 수도 없이 많은 우리와는 큰 대조를 보인다.

쓰나요시는 이같이 지극한 '개 사랑'에도 결국 후사를 얻지 못했다. 공연히 주민들만 개 때문에 '개 같은' 낭패를 겪으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쓰나요시 막부시대의 왜인(倭人)들이 진작 이런 '와이단'(猥談)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개와의 경주'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조선 사람들의 교훈이다. 개와 경주를 해서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이 되고, 지면 '개보다 못한 놈'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비길 수도 없다. 비길 경우에는 '개 같은 놈'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한때 '개 팔자 상팔자' 시절이 있었다. 만주족들은 개를 극진히 우대하며 길렀고 결코 죽이지 않았다. 이 같은 풍습은 청(淸)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명(明)나라 군사들에게 쫓기다가 개 때문에 살아난 적이 있는 데서 비롯됐다.

만주족들은 그래서 개를 자유롭게 풀어줄 뿐 잡아먹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생겨난 '만주 개장사' 타령도 여기서 나온 이야기이다. 만주 봉천(심양)에 가면 그만큼 떠돌이 개가 많았으니 그냥 몰고와서 팔기만 하면 됐을 것이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도 복날만 잘 피하면 개 팔자는 늘 상팔자였다. '오뉴월 개 팔자'란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쁜 5, 6월 농사철에도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네 다리를 있는 대로 뻗치고 누워 낮잠이나 즐기는 주인공이 바로 犬公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속타는 일이 있다고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헐떡대기는 왜 그리 헐떡대는지….

요즘도 개 팔자는 여전히 좋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호화 아파트에서 미녀와 함께 호의호식하는 견공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녕 부잣집 개만도 못한 인생도 많은데…. 마지막으로 개와 관련된 Y담을 하나 덧붙인다.

바람기가 많은 아내를 둔 어떤 중년 신사가 집에 비싼 개 한 마리를 들여놓았다. 특수 훈련을 시킨 '마누라 감시용 애견'이었던 셈이다. 이 남자와 애견 사이에는 둘만의 은어(隱語)가 있었다. 영리한 애견은 주인 남자의 단답식 질문에 '멍'(예) '멍멍'(아니오)이란 소리로 응답을 할 수 있었다.

아내의 처신이 아무래도 수상쩍은 어느 날 바깥에서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던 남자가 집으로 전화를 했고 애견이 받았다. 남자와 애견과의 통화 내용은 이렇다. "아주머니 집에 있냐?"-"멍", "혼자 있냐?"-"멍멍", "낯선 남자랑 같이 있지?"-"멍".

순간 뚜껑이 열린 남자가 냅다 소리를 내질렀다. "둘이 지금 뭐하고 있어…?" 갑작스런 주관식 질문에 당황한 애견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 이 부분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힌트를 드린다면, 앞서 나온 '오뉴월 개 팔자'의 행세를 떠올려 보시길…. 小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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