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갑(朴在甲) 서울대 의대 교수를 만난 첫 느낌.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한마디로 '와'.
초대 국립암센터 원장에 대장암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의인데 혼자서 업무를 다 처리하는 것이었다. 문자도, 이메일도, 운전도, 자료도 직접 모으고 관리한다. 깨알 같은 꼼꼼한 스케줄 관리를 직접 챙기는 것이다. 컴퓨터 마우스로 클릭을 하면서 전화 받고 후배들에게 지시하며 또 이내 필요한 자료를 찾아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을 했다.
62세로 결코 적잖은 나이다. 딸 셋·사위 셋에 손자·손녀 5명, 막둥이 아들도 올해 아버지처럼 의대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동작 빠른 젊은 회사원보다 일은 더 일사천리 척척 진행시켰다.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이를 지켜보던 기자가 오히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
13일 서울대학병원 연구실에서 만나 1시간가량 인터뷰하다 점심도 같이 먹자고 해 국방부 공무원들과의 자리에 동석했다. 식당에 전화해 예약인원 추가와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인터뷰하는 동안 어느 사이에 매끄럽게 정리했다.
대장암 수술이라는 본연의 일에 충실하다 6년 전부터는 '똥 건강법'과 '금연 전도사'로 1년에 40~50회 정도 특강를 한다. 실례를 바탕으로 한 경륜 있고 재밌는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전해져 3년 전부터는 연간 강의 횟수가 100회를 돌파하고 있다. 인터뷰와 식사시간까지 2시간여 동안 놀라운 박 교수의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봤다.
◆똥 박사의 똥 건강법
박 교수는 첫 질문에 '똥 건강법' 얘기를 꺼내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최근 똥에 관한 재미있는 강의가 기사로 인해 '똥' 이미지가 덧칠되는 것 같아 꺼려하는 듯했다. 하지만 똥은 건강의 중요한 부분. "강의한 것을 잘 보라"고 귀띔했다.
그는 평소 '삶이 똥을 닮았다'며 "입으로 들어간 건 반드시 똥으로 내놓아야 하듯이 삶 역시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똥 건강법은 이렇다. "똥을 보면 그 사람의 섭생을 알 수 있죠. 똥이 '굵다' '가늘다', '묽다' '되직하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일수록 배변량이 적습니다. 배변량이 식이섬유 섭취량과 비례하거든요. 가공식품을 많이 먹고 채식을 적게 하면 섬유질이 부족해서 똥을 적게 눠요. 육류만 먹으면 똥의 볼륨이 작아져요. 대장은 영양가 높은 음식물이 지나가면 천천히 내려보내요. 흡수할 것이 많거든요. 영국에서 실험을 했어요. 육류 위주로 먹게 했더니 하루에 똥을 100g 정도 눴답니다. 그런데 채식 위주로 바꾸니까 배변량이 육식 먹을 때보다 배가 늘었다고 해요."
이럿 탓에 그는 똥만 봐도 그 사람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다. "옛날 어른들이 '똥이 굵어야 잘 산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에요. 건강한 사람의 똥은 바나나 모양이면서 굵고 황금색입니다. 또 뒤끝을 남기지 않고 시원하게 한 덩어리로 떨어집니다. 몸이 안 좋거나 허약해지면 국수 가락처럼 흐물흐물하게 떨어져요. 요즘 여성들, 다이어트를 너무 심하게 해서 빼빼 마른 똥을 눠요. 먹은 게 없으니 대장에서 똥이 뭉쳐질 리가 없겠지요. 또 폭식하고 폭음하면 대장에서 수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무른 똥을 눕니다. 무른 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구리겠지요. 육류, 커피, 술이 주원인입니다. 과음을 하면 알코올이 소장과 대장의 운동을 자극해서 설사를 일으켜요."
박 교수의 똥 강의는 한마디로 명쾌하고 시원하고 귀가 솔깃하고 신났다. 그는 '똥'이 영어로는 '덩'(dung)이라며 발음이 비슷하다고 했다. 이어 대변볼 때 '똥' 하고 튀는 소리가 나 붙은 이름이라고 농담 섞인 얘기도 했다.
◆'금연', 목숨 걸고 합니다.
지난 30년간 6천여 회 수술을 했는데, 대장암 수술만 5천회 이상 집도한 대장항문암의 최고 권위자가 금연 전도사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박 교수는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백해무익(百害無益), 62가지 각종 발암·중독성 물질로 가득한 담배를 국가가 권장해 판매하는 것을 일종의 '공공적 사기'로 봤다.
그는 단호했다. '필요악'이지 않으냐는 기자의 반문에 "그게 왜 필요악이냐. 절대악이지"라며 "이 나라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면 그게 제일 좋은 것 아니냐"고 호통치듯 말했다. 그런 뒤 설명을 덧붙였다. 그가 금연운동을 첫 시작할 때 흡연자 인구가 1천300만명이었는데 지금 800만명 정도로 줄었고 앞으로 더 줄여나가 10, 20년 뒤에는 50만명 정도만 흡연자가 될 때는 국가에서 관리대상자에 포함시켜 건강을 챙겨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흡연자 마일리지 제도도 소개했다. '담뱃값을 1갑에 1만, 2만원 정도로 높이고 대신 흡연자들에게는 1갑당 어느 정도 마일리지 적립금을 쌓아줘 이들이 건강이 악화되거나 하면 이 돈을 환급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박 교수는 금연전도사로 자처한 뒤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있으면서도 ▷청와대 여민관·국회의사당 내 금연 ▷TV드라마 속 흡연장면 금지 ▷군 면세담배 일반유통 금지 등의 성과도 이뤄냈다.
이어 그는 정부와 담배제조회사의 로비자금을 '공개적으로 국민들을 죽이는 검은 돈'이라고까지 말했다. 담배로 인해 생기는 판매수익과 세금, 언론광고 등은 국민건강을 맞바꾼 공공자금이라는 게 그의 주장.
"만약 제게 9시 뉴스 시간대에 30분만 주시면 담배의 해로움에 대해 전 국민을 상대로 끔찍하리 만큼 강력하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담배, 분명 공공의 적이고 저는 더 발벗고 나설 것입니다."
◆대구·경북과도 인연
박 교수는 상주 박씨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상주 박씨 족보발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사벌왕릉 성역화 사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성인 고령 박씨와도 가깝다고 했다.
서울대 의대 시절에는 정영사에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 육영수 여사의 '영'을 따서 '바르게 육성한다'는 의미의 서울대 기숙사 장학생들의 모임 멤버였던 것. 의대 재학 시절, 박 대통령은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 학생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사진도 찍어줬는데 당시 딸인 박근혜 전 대표가 나왔다며 '얼마나 앳되고 예뻤는지 모른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때 사진을 그 어떤 사진보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경북 고령군의 명예군민 1호로 위촉됐다. 그는 대가야체험축제장에서 열린 제4회 고령군민의 날 행사에서 이태근 군수로부터 명예군민증을 받았으며, 명예군민증 수여자 대표로 답사를 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고령군민에 대한 금연교육과 암 예방 교육 및 각종 암 관련 사업에 대한 자문 등의 공적을 인정받아 첫번째 명예군민으로 위촉됐다. 이 군수는 "박 교수가 우리 군민 중에 대장암으로 다 죽을 뻔한 암환자들도 많이 치료해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대구·경북에 자주 특강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에서 흡연의 폐해에 관한 강의를 했으며, 지역 대학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영남대 새 재단 추천이사로도 이름이 등재돼 있다.
◆향후 계획은 '군 병원 현대화'
박 교수는 본업인 대장암 수술을 하면서 '똥 건강법'과 '금연 전도사'로도 활약하고 있지만 향후 '군 병원 현대화' 사업에 주력할 뜻을 밝혔다.
그는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이 군 병원 시설을 보면 기겁을 할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희생·봉사하다 다친 군인들은 최고의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군 병원에 파견될 최고의 의료진 확보. 그는 앞으로 군 병원에서 일하게 되는 의료진의 처우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며 군 병원의 이미지 개선작업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국방부,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들을 만나 구체적인 실행방안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나라에서 이 부분과 연관된 예산은 특별히 더 배려해야 하며,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 국방의료원이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전염병 바이러스 퇴치, 최고 권위 있는 전문의의 진료, 특수 질병에 대한 뛰어난 진료 등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취미생활, 이제야 골프 시작
박 교수는 "우리 막둥이가 대학을 들어가고 이제서야 골프를 시작했다. 의대생이 된 이후 줄곧 전문의로 국가의료발전, 사회봉사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왔기 때문에 골프는 아예 치지 않았고 술도 자제했다"고 말했다. 또 "이젠 조금 여유를 가지려 하는데 쉽진 않다. 지금껏 쌓아온 경륜을 바탕으로 조금은 더 여유를 가지고 이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박재갑은? 1948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중, 경기고, 서울대 의과대 졸업, 의과대학원 석사·박사.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암연구센터 소장,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 역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 KBS 객원 해설위원, 학교법인 건국대 이사, 감사원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대한적십자사 경영합리화 추진위원회 위원. 논문 국외 168편, 국내 206편. 한국을 빛낸 50인의 지식인(암 분야), 한국최고의사(대장수술 분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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