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한, 내가 이제껏 들어본 최고의 말은 "넌, 참 단단한 사람이야. 어데 그걸 속이노?"라는 것이다. 굳이 핑계를 붙이자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집안 사업이 부도나던 시기와 맞물려 나의 일상은 곧 반항의 연속이었다.
월말고사나 모의고사 때 빈 답안지 내기는 보통이요. 교실 문 걸어 잠그고 싸워서 학생과에 감금되기는 주중 일과였다. 차라리 전학가라는 얘기는 출석부에 적힌 이름 부르듯 꼬박꼬박 들었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며 다음부터는 안 봐준다는 얘기 역시 수업 종 치듯 매일 빠짐없이 들었다. 어쨌든 나의 중학교 3학년은 반항과 반성으로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빴다.
물론 나는 그때도 '내가 지금 반항하고 있으며,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것, 반항을 하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선을 넘어가면 후회한다'는 것쯤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때 내게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자신을 그렇게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 나의 선생님. 중학교 1·2학년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내가 3학년 담임 선생님께 혼나거나 반성문을 쓸 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으셨다. 그런 날은 인사를 해도 고개만 끄덕이셨고, 수업시간에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관심도 보이지 않으셨다. 정말 섭섭할 만큼. 반항하는 재미를 다 잃을 만큼.
그러다가도 마음잡고 무언가를 해보려는 날이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복도에서 마주치면 품에 꽉 차게 안아주면서 "니는 나 안 보고 싶나. 아니면 보고 싶어서 그리 교무실에 자주 오나"하셨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수업 중에 눈이라도 맞으면 아이들은 모르고 나와 선생님만 아는 웃음을 지어주셨다. 그리고 반성문을 쓰고 저녁 늦게 교무실에서 나오는 나를 꼭 안아주시며, "니가 이래도, 나는 니가 참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어데, 그걸 속이나?"하고 말씀하셨다.
매를 맞아 멍이 든 날에는 집에 데리고 가서 약을 발라주셨고, 그럴 때마다 빈말로라도 "니, 고등학교 수석해라. 나는 니가 1등 하는 것 보고 싶다. 니 그거 할 수 있잖아"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럴때면, 반항 삼아 낸 백지 답안지를 당장에 거둬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주셨던 나의 선생님.
그리고 대학생이 된 해에 용기를 내어 선생님을 뵈러 갔다. 그리고 낯선 학교에서 낯선 선생님을 만났다. 한 해 전에 가족을 잃었다는 선생님은 무엇보다 말수가 줄어들었고, 예전 같으면 아이들을 혼내듯 장난치듯 정을 실어 건네던 잔소리들을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다시 몇 년 후 어느 날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를 알았다. 그리고 그 학교의 홈페이지에서 선생님이 찍힌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선생님이 주인공이 아닌, 교무실 풍경을 넓게 잡아 찍은 사진. 사진의 한 귀퉁이에 선생님은 예의 그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그 낯익은 표정이 반갑다. 다행이다. 마음 한쪽이 묵직해진다. 그토록 서툴고 거칠었던 그 시절의 내게, 그토록 자만심 가득하고 고집만 부리던 내게 "넌, 참 단단한 사람이다"라고 해주신 그 말들을 앞으로도 생각하며 살 것이다. 얼마만큼은 거기에서 힘을 얻고, 거기에서 책임을 느끼며….
전병태(대구 서구 평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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