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지명에 대해서 / 허만하

바람소리는 물빛처럼 엷다. 낯선 중세의 바람소리. 플로렌스라고 부르면 깜짝 놀란 꽃가게 꽃송이들이 종아리를 매맞는 아이같이 잠시 하늘에 뛰어오르지만, 피렌체라고 부르면 적갈색 돔 지붕에 쌓여 있던 아침 햇살이 미끄러져 내리고 햇살에 젖은 광장에서 지친 길손의 발걸음은 구겨진 지도를 펼치고 다시 먼 고장 이름을 나직이 부른다. 취리히, 암스테르담, 페테르부르크, 오르도스, 위구르. 신선한 실러블 사이로 잔잔하게 떠오르는 지붕의 물결. 지명이 저마다 바람의 날개를 펼치고 비둘기 떼처럼 날아오르는 눈부신 하늘의 높이 저쪽에서 부드럽게 흐르기 시작하는 지형의 아득한 높낮이.

지명의 는 쓸쓸함이다. 아마도 이곳에서라면, 먼 유럽 도시 코펜하겐의 기표는 쓸쓸함의 반대쪽일 것인데, 코펜하겐의 중심부에서는 쓸쓸해지는 것이 바로 이국 도시의 내면인 모양이다. 실러블이란 음조이다. 소리 마디가 가진 음색은 지명을 발성할 때 드러나는 일종의 뉘앙스이다. 하여 시인은 코펜하겐의 호텔에서 창 밖 지붕에 쏟아지는 햇빛을 보면서, 세상을 더듬었던 것이다. 플로렌스의 이름에 비친 햇빛 같은 밝음은 플로렌스라는 지명의 발성과 함께 그 지명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혀끝을 윗잇몸에 살짝 대었다가 뗄 때에 나는 유성음, 받침으로 그치는 음가는 미래 사실을 나타내면서 예정, 추측, 의지 따위의 뜻을 띤다. 맨 앞의 음은 도전의 음색이지만, 플로렌스라는 실러블은 음가가 받아들이고 뱉어낸 부드러움과 밝음의 지향체가 아닐까. 피렌체에 대한 음조 또한 르네상스를 시작했던 피렌체의 시간성에 대한 사유이다. 그 지명들은 향내를 풍기면서, 시인으로부터 원래 가졌던 물성 외에 인격에 가까운 몸도 아울러 받았다. 지명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코펜하겐에서, 한번도 가보지 못했기에 낯설었던 감정과 오랫동안 들어왔기에 익숙한 정서가 부딪치면서 이 유럽의 도시는 또 다른 몸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부여한 코펜하겐의 몸은 과연 역사성과 현실성에 어느 정도 근접한 것일까. 여기서 다시 순환의 시간과 직선적 시간의 차이를 말하고 싶다. 코펜하겐의 본질은 되돌이킬 수 없는 직선의 시간에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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