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들이 즐비한 농촌진흥청에는 으뜸 만물박사(?)가 한 분 계신다." 직원들은 모르는 게 없는데다 그 수준도 얕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모르는 게 있어? 원장님께 물어봐!" 농촌진흥청 조은기(53) 국립농업과학원장. 12일 낙조가 아름답다는 수원 팔달구 화서동의 서호(西湖) 옆 농진청에서 그를 만났다.
"꽃이 폈는지, 가을이 왔는지, 밖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네요." 그는 바빴다. 세계 50여개국에 방송될 KBS 한 프로그램에 인터뷰를 마치고 오는 길이랬다. 길이 막혀 30분이나 늦었다. "영어 인터뷰를 한 터라 혀가 꼬인다. 말을 잘 못해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지난해 세계 3대 인명사전인 후즈후 등재에 대해 물었다. "부끄럽다. 다른 얘기하자"며 조 원장은 손사래를 쳤다. 겸손하다. 조 원장은 지난해 종자 보존 연구와 관련해 후즈후 사이언스 분야에 등재됐다. 경북 영양 출신이다. 경북대 농과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 도시행정학과 석사를 마쳤다. 잠시 한 눈 판 것이다. 다시 농업으로 돌아와 경북대에서 '작물 육종'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전자원 동결 보존 기술 개발'에 대한 박사 1호란다. "종자 연구에 대한 SCI급 논문을 23편 정도 냈지요. 농촌이 죽지 않아야 한국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조 원장은 미국원예학회지 검토자다. 자신이 '노(No)'하면 학회지에 실릴 수가 없단다. 자신에게 보내 온 논문의 70% 정도는 돌려보내는 '까칠남' 이다. 미국 학계에서 악명이 높다. 조 원장은 "농업은 먹는 것입니다.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지요"라 했다.
농업 분야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침을 튀기며 얘기할 정도로 열정이 녹아 있었다. 그는 "농업의 개발 잠재력은 끝이 없습니다. 농업을 무시하면 큰 코 다칩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누에로 수의나 뼈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누에로 인공 고막 개발에 성공해 곧 출시할 계획이라는 점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물 부족이 심각한데 앞으로 재배시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구마, 감자 생산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가짜 참기름을 판별하는 바이오센서도 나왔다. 고추의 매운맛을 수치화할 수 있는 기계도 나올 것"이라고 브이자(V)를 그렸다. 소년 같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단다. 전국 178ha에 이르는 농경지에 대한 종합 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다. 농업 인구에 대한 로드맵이 확보되지 않다. 농촌 인구는 하루가 달리 줄어드는데 농업 인력을 어떻게 키우느냐의 문제 의식이 없다. 식량 자급도가 점점 떨어지는 문제도 지적했다. 특히 조 원장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해외에 농경지를 확보해두지 않으면 곡물 유통 과정에서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일본은 해외에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농경지를 전체 농경지의 30% 이상 확보해뒀다"고 했다.
그는 1984년 경남 밀양에서 농업연구사(6급 상당)로 공직을 출발했다. 이후 미농무성 농업연구센터에서 '콩'을 연구했고 92년 한국으로 돌아와 농진청에서 연구 기획 일을 맡았다. 94년에는 고향인 영양으로 내려가 영양고추시험장장(長)으로 세계고추박람회를 열었다. 파프리카 전국 첫 재배를 기획한 이도 조 원장이다. 그리고 1급 상당인 원장이 됐다. 농진청 유전자원센터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농업 분야 외에도 아는 게 참 많다. 그 비결은 하루 3시간 이상의 '웹 서치'.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 시간을 확보해 놓고 '농업' '기술' '식품' '연구'라는 키워드를 한국'미국'일본판 야후에 들어가 검색한다. 필요한 것은 출력해 읽고 또 읽는다.
조 원장은 "농업을 연구하려면 최소한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연구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철학을 가져야 한단다. 그러면서 '농업이 뜬다', '현대판 목민심서' 등 3권의 책을 동시에 준비 중이다. 농민의 아들딸은 그의 건투를 빌어야 할 듯하다.
글'사진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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