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기름 담배를 끊으라는 말씀

끽연자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세상이 되었다.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심지어 술을 파는 곳까지도 금연 표어를 버젓이 내걸고 있으니 말이다. 나 같은 애연가는 전에 없이 고약한 버릇까지 생기고 말았다. 음식점이나 술집에 들어갈 때면 반드시 흡연을 할 수 있는 곳인지 확인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곳이라고 해도 담배를 피울 수 없으면 두말 않고 돌아서 나온다. 한때는 좀 투덜대기도 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식당이 있고, 술집은 더 많다. 술과 담배를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어디서고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털털거리던 시외버스 안을 자욱하게 연기로 채워도 누구 하나 인상을 긋지 않았다. 어두운 영화관 곳곳에서 빨간 담뱃불이 달아올랐다 사그라지곤 했지만 어느 누구도 '화재 경보기'를 울리지 않았다. 좀 심했다 싶지만 종합병원 복도에서도 담배를 버젓이 피워 물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아니라 엊그제 일이다.

도대체 왜들 담배 때문에 호들갑인지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담배가 더 독해진 걸까. 세상이 전에 없이 각박해진 걸까. 온난화의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의 의식이 분위기를 조장한 것일까. 나같이 담배를 하루에 두 갑 찌그러뜨리는 작자로서는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려운 일이다.

소설가 한창훈은 금연 확산 일로의 풍속에 진절머리를 친다. 향정신성 의약물질 중에 효과가 가장 약하고, 한 방이면 홍콩 간다는 대마초나 마약에 비해 값도 쌀 뿐더러, 지방세를 꼬박꼬박 바쳐가며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즐기자는데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요지다. 밥 한 숟갈 담배 한 모금 공초 오상순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제 명을 잇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다 누군가가 내 담배 연기 앞에서 면박을 주면 이젠 나도 기죽지 않고 협상 카드를 내민다. 당신이 내 담뱃불을 끄기 전에 먼저 저렇게 당당하게 활개치고 다니는 자동차 중 단 한 대만이라도 세워 보라고. 시커먼 기름 담배를 끊게 한다면 나도 앉은 자리에서 담배를 끊겠노라고. 그러나 하나같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를 무슨 생떼나 쓰고 있는 아이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 눈빛이다. 게다가 이젠 건강을 좀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며 무슨 주치의쯤 되는 눈빛으로 바뀔 때면 가상하기가 가히 절정이다.

권정생 선생은 아들 같은 놈이 안전에서 담배를 피워도 그러려니 했다. 다만, 자동차를 타고 갈 때면 에둘러 핀잔을 주었다. 이라크 전쟁도, 급속하게 세상이 황폐해지는 것도 다 석유 때문이라고 말이다. 한마디로 기름 담배를 끊으라는 말씀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교통사고로 차를 없앴다. 선생의 말씀처럼 잘 되었다 싶다가도 어느새 생각은 기름 담배를 어떻게 마련할까 걱정하고 있다. 눈치 없는 손가락은 어느새 담배 한 대 꼬나들고 있다.

안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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