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흰 가운, 주사기, 머리반사경, 청진기, 그러한 것들일 것이다. 현재에도 의사들은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는 주사기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머리반사경과 청진기의 사용은 과거보다는 드물어졌다.
나는 아직도 의사하면 청진기를 귀에 꽂고 있는 의사가 진짜 의사같이 보인다. 나와 같은 신경외과 의사는 청진기보다 검안경, 망치, 손전등 등이 더 중요한 진찰기구이지만, 그래도 청진기에 대한 미련과 향수는 털어낼 수가 없다.
청진기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환자의 몸에 직접 귀를 대고 진동을 듣는 방법으로부터 시초 되었다. 지금 사용하는 청진기는 1816년 프랑스 의사 R.T.H. 라에넥이 아이들의 놀이에서 암시를 얻어 노트를 통모양으로 말아 청진을 시도한 것으로부터 발달했다. 청진기에는 관상(管狀: 單耳)과 쌍이(雙耳)가 있다. 관상 청진기는 L. 트레우베가 고안한 트레우베형 청진기가 있다. 산부인과에서 태아의 심음, 제대의 잡음이나 태동음을 듣는데 주로 사용한다. 양이형은 지금 의사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청진기로, 1854년 미국의 G.P. 카만이 발명했다.
군의관시절 이동 외과병원과 후송병원에서 내과 환자들을 1년간 돌 본 경험이 있다. 그때 청진기를 자주 사용했었다. 젊은 병사들의 가슴 속에서 품어 나와 내 귀를 울리던 거친 숨소리와 쿵쾅거리는 심장 뛰는 소리, 그 속에는 젊은이의 터질 듯한 희망의 봉오리가 숨 쉬고 있었고, 불 같은 열정이 뜀박질하고 있었으며,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보는 주인댁 아가씨에 대한 양치기 목동의 순수한 사랑을 닮은 울림이 있었다. 그때는 나도 젊어, 덩달아 그 소리에 맞춰 내 숨소리가 거칠어지기도 했고, 심장도 쿵쾅거렸으며,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맑은 밤하늘의 별빛이 가슴속으로 숨어들기도 했었다.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가끔 가슴이 텅 비어있는 듯한 공허함을 느낀다. 그곳을 채우고자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기도 한다. 글을 쓰고 읽으면서, 좋은 음악을 듣고 연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보면서, 그리고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면서 말이다.
5월의 싱그러움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 속에는 힘이 있다. 대지에 귀를 대고 들어보고 싶다. 내 군의관 시절 청진기 속에서 들었던 젊은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힘찬 심장 박동소리를 닮은 소리를. 그 소리를 끄집어내 텅 빈 공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휘청거리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채워넣어 주고 싶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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