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재래시장의 쇠퇴

지난 10여년간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주요 공약 하나가 있다. 영세상인 살리기와 재래시장 활성화다.

지난 세월 대다수 서민들의 삶과 함께 있었고 골목 어귀마다 자리 잡았던 재래시장이 1990년대 대형 소매점 등장 이후 점점 쇠퇴하기 시작해 이제는 '생존'을 걱정할 정도가 된 때문이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구가 줄면서 노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전락한 시골 장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도시에 자리 잡은 대형 재래시장이나 골목 시장이 쇠퇴하는 것은 소상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대형 소매점을 통해 매일 수억원의 돈이 역외로 줄줄 빠져나가는 것도 가뜩이나 돈이 말라 있는 지역경제 사정으로 볼 때 엄청난 손실이다.

이에 따라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공약들이 쏟아져 나왔고 일부는 이미 시행에 들어가 있다. 이 중 대구시가 내걸고 있는 '4차순환선 내 대형 소매점 허가 금지'는 가장 강력한 정책 중 하나다. 도심지내 대형 소매점 신규 허가를 막아 재래시장 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재래시장 상인들로서는 당연히 환영할 수밖에 없는 조치다. 하지만 대형 소매점 증가를 막고 재래시장 현대화를 통해 시민들의 발길을 다시 재래시장으로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래시장 활성화는 우선 '쇠퇴'의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대형 소매점 등장뿐 아니라 재래시장 몰락의 주요 원인으로 '한국식 도시계획'도 큰 몫을 차지한다.

한국은 아파트가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고 대구는 전국에서도 아파트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지난 1월 기준으로 대구지역 주택(전체 64만6천가구) 중 아파트는 64%에 이른다. 또 대구시가 대중교통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구는 대중교통 이용률이 가장 낮은 도시다.

따라서 자가용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고 대다수가 주차장이 있는 아파트에 살다 보니 도보 이용이 1차적 경쟁력인 골목시장이나 재래시장은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나 대구시가 얼마 전까지 도심 재개발보다는 외곽택지 조성에만 매달리다 보니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달서구나 수성구 등 1980년대 이후 조성된 택지 지역 내에는 아예 규모 있는 재래시장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서 시민들은 고민해 봐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찾는 데 편리성이 앞선 대형 소매점을 가느냐, 아니면 지역경제를 위해 조금 불편하더라도 걸어서 재래시장을 찾을 것이냐는 고민이다.

주택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아파트 공급에만 매달려온 과거는 제쳐두더라도 앞으로도 문제다.

MB정부 이후 전국 주요 도시마다 불고 있는 도심 재개발, 재창조 사업에서도 '아파트'만 있지 '재래시장'이 설 자리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신규 택지와 달리 도심 재개발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중심이 돼야 한다. 또 재래시장은 잘만 활용한다면 도심 재창조, 재개발에 또 다른 테마가 될 수 있다.

시민들이 재래시장을 가깝고 쉽게 찾을 수 있는 동선을 만들고 재래시장이 도심 활성화에 중심이 될 수 있는 21세기형 도심 재창조를 기대해 본다.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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