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능형 전력망 사업 본격화…대구경북이 주도해야

저녁에 TV를 보다가 전원을 끄면 그날 TV가 소모한 전력요금이 몇 초간 비친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액정화면에 몇 십원씩 요금이 올라가는 것이 보이고 조명을 켤 때, 전기주전자로 물을 끓일 때도, 전자레인지로 남은 밥을 데울 때도 얼마나 전기를 썼는지 보여준다. 날씨가 더울 때 에어컨을 켜려고 하면 지금 전기요금이 한창 비싸니 잠시 뒤에 이용하라는 안내문자가 액정 패널에 뜬다. 이같은 생활상은 조만간 실현될 스마트그리드(Smart Grid·지능형 전력망)가 가져다 주는 변화다.

세계 각 국이 스마트그리드 구현과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로 스마트그리드 시범도시 선정과 함께 스마트그리드를 적용한 스마트시티(Smart City) 마스터플랜을 수립중에 있다. 첫 사업으로 810억원을 들여 주거, 빌딩, 공장 등이 혼합된 3천가구 규모의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test bed) 구축을 위해 올해 안에 입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지역의 전문가들은 "대구경북이 가장 앞선 전력 인프라에다 IT산업 기반이 강해 실증단지 조성 등 스마트그리드 테스트베드로서의 적지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 스마트그리드 사업 선점을 위해 테스트베드 선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의 시대도래

현재의 전력망으로는 전기를 공급하는 주체는 전기를 누가, 얼마나 필요한지, 또 얼마나 사용하는지, 낭비되는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력회사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미래의 전력망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통신·네트워크·소프트웨어(SW) 기술을 활용해 전력망을 업그레이드하면 발전·송전·배전 현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안정화함으로써 전력공급량 부족이나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막아보자는 발상에서 출발, 머지않아 기술완성을 끝내고 현실화된다.

전력 공급자는 전력 수요를 정확히 분석하고 이에 따른 합리적인 요금 결정이 가능하다. 소비자는 전기기기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고, 계절별·시간대별로 달리 적용되는 전기요금제 선택이 가능해진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모든 전기에 꼬리표가 달린다. 전국 가정·사무실·공장의 전기 소비 패턴이 낱낱이 파악되고 전국 송전철탑과 전봇대에 자동제어 센서를 달면 원자력 전기, 석탄 전기를 구분해서 공급할 수 있다. 또 가정에서는 가전제품에 달린 지능칩이 오른 전기료에 반응해 가동을 멈추거나 약하게 만든다.

◆2030년이면 1경원 규모 시장

'월드에너지아웃룩(WEO) 2006'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세계 전력설비 시장 규모는 자그마치 11트릴리온(trillion), 1경원 이상이다. 당장 미국 정부는 지난달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 1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EU도 수년 전부터 집행부 내에 스마트 그리드를 구축하는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인도·중국·동남아 등도 선진국 사례를 따라 전통적인 전력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스마트그리드를 적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스마트그리드가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희철 대구대 교수는 "한국의 앞선 IT기술을 접목하면 스마트그리드는 반도체와 조선을 이을 차세대 먹을거리 산업으로 우리 나라가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스마트그리드 구상

한국은 지능형 전력분야에서 가격경쟁력과 기술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나라로 이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정부는 올해 안에 로드맵을 만들고, 법을 정비한 뒤 2011년 시범도시 건설, 2020년까지 가전제품시장을 바꿔놓고, 2030년 전국 스마트그리드화를 완성시킨다는 그림을 그려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력IT사업단 등을 통해 수년 전부터 비교적 일찍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전문가들은 미국·유럽·일본의 전력기기 가격은 너무 비싸고, 중국 제품은 신뢰성이 떨어지므로, 한국의 앞선 IT인프라와 전력기술을 이용하면 거대한 시장선점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경권 녹색성장 동력으로

대구경북은 스마트그리드사업의 기반이 되는 에너지 및 IT 산업이 발달해 있고 그린에너지와 IT융복합산업이 광역경제권 선도사업으로 지정돼 스마트그리드사업이 불붙을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대구경북의 신재생에너지업체 수는 434개(전국 비중 18.0%)이고, 향후 150여개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가동될 계획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과 우수 IT업체. 모바일융합기술센터 등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IT산업과 타 산업 분야를 융합할 수 있는 잠재력도 충분하다. 경북에는 원전 10기가 가동 중이며 향후 총 14기가 건설될 예정이고 에너지 생산 및 이용에 필요한 원료, 기자재, 부품소재 등 후방연관산업과 에너지 다수요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전방연관산업 집적지를 보유한 것도 강점.

대구경북연구원 설홍수 부연구위원은 "2013세계에너지총회와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으로 대구가 녹색성장 시범도시 선정이 유력, 스마트실증단지 입지의 적지다"며 "이를 위해 민관합동 추진조직을 구성하고, 대구의 솔라시티계획, 경북의 동해안 에너지클러스터와 연계해 스마트그리드를 적용한 지역 차원의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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