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꿈'이 있다면

최근에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라는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한나'는 자신이 문맹임을 숨기기 위해 기꺼이 감옥행을 선택할 만큼 자존심 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끝까지 수행하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가담했던 '한나'는 분명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일을 끝까지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연민이 느껴졌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든 아니든 간에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다. 회사원, 공무원, 자영업자, 선생님, 의사, 검사, 미화원…. 각기 하는 일과 이름은 달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 무엇이든 간에 스스로 자기 직업을 우쭐되거나 비하할 필요는 없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어떤 직업이든 남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장면 배달부가 '번개'처럼 배달을 해 단박에 스타가 되고, 집안일을 열심히 하던 주부가 유명 가정용품회사의 컨설턴트가 되는 꿈 같은 성공스토리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전해 듣곤 한다.

과거의 기준에 의한 사농공상의 직업귀천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광대라고 일컫던 연예인이 젊은이들의 꿈꾸는 직업이 되었고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피겨스케이팅 선수, 야구선수, 축구선수가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직업이 되었다.

내가 일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구성원들 중에는 자신의 일을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음을 종종 본다. 자신보다는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늘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더 이상 유통은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이 아니다. 오히려 깨끗하고 과학적인 첨단산업으로 세계에서도 뛰어난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산업으로 판명이 났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경우 세계적인 기업 3, 4개만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유통업이 아무나 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인 것은 내부적으로는 과학적이고 전문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하는 반면 외부적으로는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감성,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통은 이성적인 지식과 감성적인 창의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부분들을 함축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유통은 1세대 할인점, 2세대 가치점, 3세대 감성점을 거쳐 제4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제4세대 유통은 문화점일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는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이며 문화를 공유하는 일상의 생활공간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미네소타의 미니애폴리스는 쇼핑센터 Mall Of America로부터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소비가 진작되어 생산이 유발되고 외부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일자리도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는 GDP의 상당 부분을 수출에 의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금방 경제가 어려워진다. 우리 경제가 몇몇 나라의 경제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소비를 늘려야 한다. 일본이 수출로 먹고사는 줄 알고 있지만 수출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약 20%에 불과하다. 반면에 우리는 7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바꾸기 위해 내수를 키워 수출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 국내 소비를 자극해 경제의 파이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일상의 소비를 위해 외국으로 나가지 않게 된다. 수출로 번 돈을 외국에서 소비한다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낭비인가?

대구가 미니애폴리스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현재 대구의 상업지역 중에서 고객의 외면을 받는 곳이 있다면 냉정하게 판단해서 보존할 것을 보존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과감한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이러한 리모델링은 미래지향적이면서 이 지역 본연의 따스함이 녹아 있어야 한다. 문화가 있는 유통을 꿈꾸는 사람과 문화가 있는 유통을 즐기고 싶은 시민들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면 차세대 유통을 통해 세계적인 도시가 되고 싶은 대구의 꿈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도성환(홈플러스테스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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