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겨울에서 바로 여름으로 '봄 실종 사건'

봄이 오는 듯싶더니 벌써 여름날씨다. 이 때문에 여름에만 팔리던 상품들이 사계절 상품으로 둔갑하고 냉방용품을 찾는 시기도 훨씬 앞당겨졌다. 일찍 나온 여름 해충들로 방역에도 비상이 걸리고, 늦은 밤 시원한 곳을 찾아 공원으로 나서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여름이 길어진다=기상청이 분석한 '한반도 기후변화'에 따르면 하루 평균 기온이 20℃ 이상인 여름은 70년 전보다 13~17일 늘어났다. 대구 지역은 아예 봄이 실종된 지 오래다. 4월 평균 기온은 15.4도로 평년(1971~2000년) 13.8도에 비해 1.6도나 높았다. 최고 기온(21.9℃)도 평년 최고기온(20.1℃)에 비해 1.8도나 높았다.

5월은 더 심각하다. 19일 현재 대구의 5월 평균기온은 21.0도로 평년(18.7℃)에 비해 2.3도나 덥다. 특히 최고기온은 28.1도로 평년 최고 기온보다 3.1도나 높았다. 이는 6월 평년 기온인 28도보다 높은 수준. 기상학적으로 '평균기온이 연속 5일간 20도를 넘은 날'을 여름으로 인정하는데 이번 달의 경우 4일부터 14일까지 열흘의 '여름'이 있었다.

◆여름에만 입는다고요?=직장인 송모(32·여)씨는 해마다 봄이 되면 신었던 살구색 스타킹을 올해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봄기운을 느끼기도 전에 더위가 찾아와 맨다리로 다녔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컬러 스타킹이 유행하면서 살구색 스타킹은 더 신을 일이 없다. 송씨는 "겨울에는 검은색 스타킹을 신다가 봄이 되면 살구색을 찾는데 올해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봄·가을이 사라지면서 유통가에도 '시즌 상품'이 '연중 상품'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발가락과 발뒤꿈치만 덮는 덧버선 형태의 스타킹이나 투명 브래지어 끈의 경우 여름 상품에서 탈피, 사계절용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홈플러스 성서점 관계자는 "여름에만 주로 팔리던 덧버선 스타킹이 올 들어 두 배 이상 팔려나가고 있다"며 "요즘은 한겨울을 제외하면 꾸준히 판매된다"고 말했다. 에어컨, 선풍기 등 냉방용 전자제품을 찾는 시기도 빨라졌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냉방기 매출이 10%나 늘어난데다 시기도 지난해에 비해 2주 정도 앞당겨졌다"고 했다.

◆때 이른 피서, 방역은 비상=이른 더위를 피해 인근 공원을 찾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예년 같으면 6월은 돼야 밤에 공원을 찾던 시민들이 올해는 한 달이나 앞당긴 이달 초부터 공원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두류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때 이른 더위에 방문객이 늘면서 치킨이나 소주·맥주 등 쓰레기 배출량이 엄청나게 늘었다"며 "시민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되가져가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호소했다.

방역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근 대구 북구 신천 하류 침산교 인근 버드나무 가지에서 해충이 대량 번식하고 있다. 빨리 찾아온 여름 탓이다. 낯선 벌레들이 출현하고 구제 시기도 더 길어졌다. 달서구의 경우 지난달부터 붉은 개미와 날벌레가 폭증했다는 민원이 접수돼 보건소가 긴급 방제에 나섰다. 북구청은 지난달 초부터 무당벌레와 진딧물의 수가 늘어 예년보다 한달 일찍 방제를 시작했다. 더운 날씨가 늦게까지 계속되면서 달서구는 10월 말까지 하던 해충 구제를 한달 늘리기로 했고, 북구청은 6월에 하던 방역 작업을 이달 초부터 시작하고 방역 횟수도 하루 3회에서 4회로 늘렸다. 달서구보건소 관계자는 "예전보다 해충의 출현 시기가 빨라지고 종류도 다양해진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축제 이름도 바꿨다=이른 여름은 축제 이름까지 바꿨다. 경남 김해시는 8년째 열어오던 '연지 봄 축제'의 이름을 '연지 나들이 축제'로 변경했다.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면서 '봄 축제'란 명칭이 어울리지 않게 된 탓이다. 김해시 관계자는 "봄 축제를 하기에는 너무 덥다는 여론이 많아 축제 명칭을 바꿨다"며 "내년에도 올해처럼 기온이 올라갈 경우 나들이 축제라는 명칭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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