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골목은 '긴 골목'이라는 뜻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길다'는 말을 '질다'로 발음한다. 마찬가지로 '김'을 '짐'으로, '길'을 '질'로 발음한다. 그래서'긴 골목'이'진 골목'으로 불리어졌다. 진골목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오래된 골목이다.
진골목은 경상감영으로 이어지던 길이다. 지금의 종로 홍백원 오른쪽 골목에서 중앙시네마 뒤편 길을 따라 국일따로국밥 왼쪽 길을 지나면 경상감영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종로2가~남일동~동일동~전동으로 이어진다. 이 골목은 예전부터 부자들이 모여 살던 동네로 유명하다.
근대 초기 달성 서씨들의 집성촌이었다. 대구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을 비롯한 그의 형제들이 모여 살았다. 달성 서씨들은 고려시대부터 달성'동산'계산'남산'종로 일대를 기반으로 삼아 명성을 누리던 호족이었다. 근대에 와서는 약재 거래로 큰 부자가 된 김성달,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과 이동찬, 정치인이자 체육인이었던 신도환, 금복주 창업자 김홍식, 그리고 평화클러치 창업자 김상영 같은 부자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진골목 최고의 부자는 서병국이었다. 그는 3천300여㎡(1천여평)나 되는 저택에 살았다. 지금의 화교협회와 화교소학교를 포함한 일대가 그의 땅이었다.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물려받은 재산으로 약전골목의 약재상들을 상대로 객주 일을 보면서 해방직전까지 부를 누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해방직후'호열자'라 불리던 콜레라로 40대 젊은 나이에 타계했고, 그 뒤 가족들이 부지를 화교협회에 매각했다.
지금의 종로숯불갈비'진골목식당'미도다방'보리밥식당 건물의 주인은 서병국의 친척인 서병원의 저택이었다. 또한 정소아과의원 건물은 서병국의 방계 형제인 서병기의 저택이었다. 뒷날 동생인 서병직에게 물려주었고, 1947년 정소아과원장 정필수(88)가 매입, 병원으로 사용 중이다. 2층 양옥 건물은 일제시대 상류층의 주거문화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정필수 원장은 진골목의 인간문화재로 불릴 정도로 향토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서병기와 서병직은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다. 1930년대 초반부터 이인성 최화수 서동진 박명조 배명학 서진달 이현택 김성암과 함께 '향토회'회원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 가운데 배명학은 나의 은사이기도 하다. 석재 서병오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조금 떨어진 남일동 농협중앙지점 자리에서 태어나 자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조선 철종13년(서기 1862년) 대구 갑부 서상민(徐相敏)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비범해서 신동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같은 재능을 바탕으로 당시 영남의 문장가요 유학자인 방산(舫山) 허훈(許薰)과 면우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배웠다. 그의 부친은 아들이 공부에 열중할 수 있도록 일찌감치 동화사로 유학을 보냈고, 행여 태만할까 염려하며 글씨 공부한 것을 날마다 화선지에 적어 보내도록 다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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