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은미(43)였다. 그 흔한 예능 프로그램에 한 번 나오지 않고도 이은미는 신보 '소리 위를 걷다'에 수록된 노래를 널리 알렸다. 단지 알린 것뿐만이 아니다. 수록곡 '헤어지는 중입니다'와 '결혼하지 않길 잘했지'는 각종 차트의 상위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저를 음원형 가수라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기분이 좋다기보다 '다른 가수들이 참 먹고살기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가수가 노래로 인정을 받는 게 당연한 건데 오히려 그런 사람을 '음원형 가수'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전 음반과 공연으로만 20년을 활동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요."
이은미의 노래는 사랑과 이별을 얘기하지만 결코 흔하지 않다. 가슴에 전달되는 가사와 음색은 팬들의 귀가 아닌, 마음에 와 박힌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최진실도 생전에 그의 노래 '애인있어요'를 참 좋아했다. 사망 직전 최진실의 미니 홈피 배경음악도 이 노래였다. 최진실은 지인과 노래방 등에 갈 때 항상 이 노래를 부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 이 노래는 최진실의 유작인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삽입되기도 했다. 고인의 영결식과 삼우제에서도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은미는 생전 최진실을 만나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했다.
"내 노래 '애인있어요'를 최진실씨가 생전에 너무 좋아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죠. 장례식장에 가려 했지만 착잡한 마음에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최진실씨의 사망 소식에 온 국민이 느꼈던 것 같은 허무함과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 뜸해지면 고인을 만나러 납골묘를 찾을 생각입니다."
이은미는 또 고인의 생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계속 엇갈려 만나지 못했다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MBC 드라마 관계자로부터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삽입된 내 노래를 고인이 너무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진실씨가 꼭 나를 만나 보고 싶다고 해 드라마 마지막 촬영일 날 촬영장에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촬영 일정이 바뀌고 바뀐 촬영 날짜에 내 공연 일정이 겹치면서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은미는 최진실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담아 자필 쪽지와 함께 음반을 최진실에게 보냈다.
"'애인있어요'를 발표할 때 나 역시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터널을 다행히 잘 빠져 나왔죠. 그런데 고인은 나처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음을 택했다는 게 너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고인을 만나고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좀 더 노력을 해 볼걸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요."
이번 노래 '결혼하지 않길 잘 했지'는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한 옛 인연과 다시 만나 우정을 나누는 관계를 그렸다. 작곡가 윤일상이 작곡하고 김영아가 가사를 썼다.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제목처럼 헤어지는 과정을 애절하고 슬프게 노래했다. 마찬가지로 윤일상이 작곡하고 작사까지 했다. 두 노래는 30대 여성들에게 공감을 사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좀 살아 보니까 20년 넘게 된 '남자인' 친구가 생기더라고요. 물론 다들 장가를 갔고요. 그 얘기를 하고 싶었죠. 저와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초보은'이라고까지 말하기엔 너무 비장하지만 팬들은 제 노래 중에 '기억 속으로'와 '애인있어요' 같은, 이별을 노래한 슬픈 발라드를 가장 좋아 하시더라고요. 그런 음악을 가장 잘 만드는 사람들과 작업을 해서 제가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가 팬들에게 드릴 수 있는 선물이라 생각했고요."
남자인 친구들은 다 장가를 가는 마당에 정작 이은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냥 웃기만 한다. 서른일곱 살이 되던 해에 가족들도 모두 포기했다는 말과 함께. 그는 취미 생활하며 노래하며 어느덧 이 나이가 됐다고 했다.
그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989년 신촌블루스 3집 객원보컬로 데뷔해 올해로 꼭 20년을 노래했다.
"20년이나 됐다는데 전 그냥 담담하네요. 그동안 드라마틱한 일도 많았죠. 사기도 많이 당해봤고요.(웃음) 저 스스로는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20년인데 팬들이 어떻게 봐 주실지 모르겠어요. 지루해 하실까봐 걱정이 많이 됩니다."
신인 가수 중에는 이은미를 존경하는 가수로 꼽는 사람이 많다. 20년을 한결같이 맨발로 무대에 올라 열정을 쏟아 내는 이은미. 그는 여러 후배 가수의 롤 모델이다.
"음악인으로서의 기본을 했을 뿐인데요. 음반을 내고, 또 공연을 하고 그것뿐인데 오히려 그게 요즘엔 가수들에겐 경이로운 일이 됐네요.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 개인기를 해야 노래도 띄우고 뮤직비디오라도 틀어 주는 상황에 노래만 해서 가수 활동을 하는 게 특별해 보이나 봅니다."
이은미는 이와 함께 후배 가수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즘엔 기획이 스타를 만들죠. 가수들은 기획사의 기획에 자신의 의지를 반영시키는 게 어렵다고 변명을 하지만 기획사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는 것도 본인의 몫입니다. 막연히 남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에 대한 환상 때문에 가수 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일인지는 생각하질 않고요."
이은미는 이런 가요계 상황에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는 음악과 공연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더 열심히 노래를 한다.
이은미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공연을 한다. 17일 대구에서 팬들을 만났고, 23일에는 창원에서 공연을 갖고 6월 21일에는 광주로 내려간다. 그 뒤로도 팬들과의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무대를 너무 사랑합니다. 20년 가수 생활을 하며 딱 4번 느껴 본 느낌이 있어요. 무중력 상태 같기도 하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느낌 같기도 하죠. 오로지 사람들의 호흡 소리만 들리고 영혼이 몸을 이탈한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완벽한 일체감이죠. 다행히 이 느낌을 매번 느끼진 못해요. 다시 한 번 그걸 느끼려고 더 열심히 몰입하고 더 열심히 노래를 합니다."
이은미는 20년이나 가수 활동을 했는데도 무대가 아직까지 어렵고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집중하고 더 노력해야만 한다고 열정을 드러냈다. '맨발의 디바'는 지금까지도 이은미였고, 앞으로도 이은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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