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자전거 유행

요즘 산에 올라가 보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신록 못지않게 이채로운 볼거리가 있다. '○○바지, △△점퍼' 같은 유명 브랜드로 일색을 이룬 등산객들이다. 한 벌 차려입고 등산화에다 몇 개의 기본장비를 갖추는 데만 30만, 40만 원은 훌쩍 넘는 수준이다.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들의 최고 소일거리이자, 서민들에게 적합한 취미라는 표현이 어색한 지경이 됐다. 하다못해 짝퉁이라도 입지 않으면 산에 들어서는 초입부터 뒷덜미가 당기는 판이다. 세간의 유행에 뒤처지면 안 되겠다는 일종의 동류의식이 절로 든다. 불과 몇 년 사이 일이다.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으로 급격히 주목받는 자전거도 비슷한 길을 걷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국에서 수시로 열리는 자전거 행진이나 이벤트를 보면 어디서나 참가자 대부분이 최신 장비로 무장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날렵한 헬멧에 기능성 옷, 자전거용 신발과 선글라스, 장갑과 물병까지 일습을 갖추는 데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 보인다.

자전거는 또 어떤가. 우리가 어려서부터 봐왔던 앞뒤 짐받이에 큼직한 핸들, 기어도 없는 자전거는 눈 씻고 봐도 없다. 생활형 자전거는 10만 원 안팎이지만 그걸 타고 행사에 참가하는 이는 거의 없다. 갖가지 기능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수십만 원, 수백만 원짜리가 전국에 굴러다니는 것이다. 샤넬, 벤츠 같은 브랜드는 1천만 원을 넘기도 한다니 이쯤 되면 녹색 교통수단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세계적으로 자전거 시장 규모는 2007년 기준 1억2천만 대로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인다. '빨리빨리'의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 100만 대 수준에서 2005년 200만 대로 늘어나는 등 연평균 18%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급증한 관심을 감안하면 시장 성장 속도는 눈이 핑핑 돌 정도다.

산업 측면에서는 기능, 소재, 디자인 등에서 첨단을 구가하는 고부가가치 자전거를 개발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어렵사리 붐을 일으키고 있는 자전거 타기 문화가 '비싼 유행' 때문에 부자들의 고급 취미로 전락하는 건 막아야 한다. 대통령부터, 대구시장부터 생활형 자전거를 타고 행렬의 맨 앞에 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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