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하는 이가 많지 않으나 지금 우리에겐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한 매우 중대한 이슈가 하나 던져져 있다. 이쯤에서 쌀 시장을 앞당겨 완전 개방하는 게 국익에 훨씬 도움 되니 서둘러 추진하자는 주장이 최근 제기된 게 그 시발이다.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 쌀 시장 개방은 당분간 유예돼 있다. 앞으로 5년 후(2014년)까지 그렇게 하도록 5년 전 주요 쌀 수출국들과의 협상에서 합의된 것이다. 대신 우리는 일정 양의 외국 쌀을 5% 미만의 관세만 붙여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첫해(2005년) 22만5천575t서 시작해 매년 2만347t씩 늘려가야 한다. 특히 유예기간 마지막 해 수입량 40만8천700t은, 그 후 시장을 완전 개방하더라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우리 쌀 생산량(연간 440만t)의 10%, 경상남도에서 매년 생산하는 총량에 상당하는 분량이다.
저런 강제규정을 받아들인 것은, 협약 당시엔 그게 우리 쌀 농업을 지키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이 곧 타결되면서 쌀에 붙일 수 있는 관세 허용치가 낮게 결론 날 것으로 전망한 결과다. 그런 조건에서 시장을 마구 열었다가는 우리 농업이 결딴날 상황이라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사태 추이는 그 전망을 빗나갔다. DDA 협상은 지금도 흐지부지한 가운데 쌀 관세율도 수입원가의 500% 이상 높게 허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상이변과 바이오에너지 수요 등으로 쌀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최근 쌀 국제가격이 2004년 협상 당시의 2.5배 수준으로 치솟는 이변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 변화는 먼저 우리 쌀 농업 경쟁력에 대한 판단의 변화를 불러왔다. 비싸진 국제 쌀값에다 높은 관세까지 붙일 수 있게 허용된다면 국내산 값이 오히려 외국산보다 낮아져 우리 쌀 농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가 생긴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5년 뒤를 내다본 가격 비교 결과가 단적인 예다. DDA 협상에서 우리가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을 경우 가마당 수입쌀은 17만6천 원인데 비해 우리 쌀은 14만3천500원 수준이 되고, 선진국 지위로 편입되면 13만2천500원 대 11만8천 원 정도가 될 것이란 게 그것이다.
근래 제기된 쌀 시장 조기 개방론은 바로 저런 판단을 기초로 한 것이다. 쌀 농업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데도 시장을 계속 닫아놓고 있으면 의무수입량만 자꾸 늘어가 결국 우리에게 손해라는 주장이다. 만약 개방을 내년으로 앞당길 경우 최종 의무수입량을 30만t 선에서 정지시킬 수 있어 앞으로 10년간 1천800억∼3천700억 원에 달하는 추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도 한다.
조기 개방론을 주도하는 것은 정부다. 지난달 초 첫 워크숍을 가진 민관합동기구 '농어업선진화위원회'의 주제로 내민 것이 그 시작이다. 달포 전에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같은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며칠 뒤엔 농식품부가 국회에서까지 개방 검토 필요성을 공식 천명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본격 토론은 아직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 선진화위원회가 처음으로 토론회를 마련하긴 했으나 무산된 바 있을 뿐이다. 전국 몇 개 지역을 돌며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해 놓고서는 활동 시한이 한 달여 밖에 안 남은 기구를 통해 성급히 결론 내리려 해서는 안 된다며 농민단체가 반발한 결과다.
하나 이 사안은 대충 묻고 넘겨 좋을 바는 결코 아니다. 엄청난 국가적 손익이 달린 문제를 그래서는 안 된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 문제도 아니다. 냉철하고 치열한 검증을 통해 국익에 도움되는 쪽으로 국민적 공감대와 선택을 이끌어 가야 한다. 농민단체 주장처럼 어물쩍 추진해 버리려 해 될 일이 아니고, 쌀 농업 보호에만 매달리느라 호기일지도 모를 기회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지금 정부나 농민단체에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말 국익만을 가장 중요한 명제로 놓고 어떤 선입견이나 특정한 복심도 없이 이 문제를 공명정대하게 따져 보겠다는 태도다. 그러기로 합의한다면 조기 개방이 국익에 도움 될지 아닐지 공동의 판단을 만들어 내는 일이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말 서둘러야 할 것은 바로 이 복심 없는 토론이다.
朴 鍾 奉(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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