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도 싱글들의 인터뷰는 어려웠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했다. '혼자 살고 있음'이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리는 바람에 섭외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름과 얼굴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싱글녀 4명이 모였다. 50대에서부터 30대까지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세대 차이'가 난다면서도 종횡무진 싱글의 삶을 쏟아냈다. 그들은 좋은 사람만 있으면 언제든지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타인에 의해 지금의 생활이 흔들리는 것을 싫어했다. 또 누구를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을 오랫동안 누리고 싶어했다.
-싱글은 보통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애당초 싱글' '어쩌다 보니 싱글' '어쩔 수 없이 싱글'이다. 싱글의 삶을 택한 이유를 듣고 싶다.
▶이민(38세)=인연을 애타게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해 지금까지 싱글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인연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아직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좋고 결혼해서 집안 일과 직장을 함께하며 힘들어 하는 동료를 보면 적극적으로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허진(40세)=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렇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게 됐다. 어쩌다 보니 싱글인 셈이다. 싱글도 자연스러운 삶이다. 약간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박주(35세)=아직도 결혼보다는 일에 무게중심을 더 두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과 정열을 희생해야 하는 결혼제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없다. 대구의 결혼시장이 너무 좁은 것도 이유다. 괜찮은 상대를 찾기 힘들다. 나이가 드니 선택의 범위가 더욱더 좁아지는 느낌이다.
▶박화(58세)='애당초 싱글'들은 거의 없다고 본다. 주변의 싱글들을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기만 한다면 결혼할 생각을 갖고 있다. 나를 사랑해줄 남자는 많았지만 내가 사랑하고픈 남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싱글로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멋진 사람이 나타나면 지금이라도 결혼하고 싶다.
-싱글의 달콤함을 이야기해 달라.
▶박화=여행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떠나고 내가 벌어서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좋다. 해외여행을 가도 비즈니스석을 이용한다. 특히 일에 지쳐 집에 올 때 그대로 자면 된다. 누구를 돌봐줄 필요도 없고 그냥 나 혼자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좋다.
▶이민=결혼해서 집안 대소사 챙기고 명절 때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혼자라는 사실이 가벼워서 좋다. 어려움이나 즐거움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도 간편한 삶 같아 괜찮다. 가족이 생기면 즐거움도 나누어야 하지만 고통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내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고통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허진=주말을 오롯이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일에 올인할 수 있는 점도 좋다. 노년에는 외로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유 있고 자유롭다. .
▶박주=경제적으로도 이점이 많다. 결혼하면 수입이 가족 수로 나누어지지만 고스란히 나 자신을 위해 쓰면 되니까 이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연애는 꿈꾸는가.
▶박주=연애를 하면 곧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묶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랑하면 다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덕적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것 없다면 굳이 폐쇄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민=보수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연애 따로 결혼 따로는 아니라고 본다. 호감이 가서 연애한다면 결혼해야 하는 것 아니냐. 연애 상대가 있다면 결혼을 하지, 왜 결혼을 하지 않겠느냐.
▶박화=늘 연애를 꿈꾼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 싱글들에게 연애는 꿈일 뿐이다. 연애도 하고 싱글의 장점도 마음껏 누리는 '화려한 싱글'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본다. 특히 좁고 보수적인 대구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싱글들의 삶도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왜곡돼 있기도 하다.
▶박화=옛날의 싱글들은 사실 강하고 억세고 여성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싱글들은 모나지 않고 원만하다. 싱글을 히스테릭하게 보는 시선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나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혼자 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결점을 스스로 체크하려 노력한다. 너무 이기적이지는 않나 너무 모나지 않나 등등…. 나 자신부터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허진=싱글 하면 주위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부담스럽다. 싱글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남과 약간 다른 삶을 택했을 뿐이다. '결혼 언제 할 생각이냐'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박주=스스로 예민하고 날카로워질 때가 있다. 완벽하게 일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참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인간적으로 숙성되지 않은 점도 있다. 각별히 자신을 단속하고 조심한다.
-친구의 청첩장을 받을 때 기분은.
▶이민=재능 있는 친구들이 결혼 때문에 재능을 포기하고 평범한 주부의 삶을 선택할 때는 정말 속이 상한다. 재능 있는 친구가 결혼 생활 4년 만에 평범한 동네 아줌마가 된 모습을 보고 정말 황당했다. 그림도 포기하고 신랑과 아이들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삶일까 하는 의문을 아직도 떨칠 수 없다.
▶허진=결혼한 친구 중에 연애할 때만 행복했다고 말하는 친구를 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그렇게 좋아서 결혼했으면 끝까지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 아이들 때문에 산다는 친구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박주=이왕 결혼했으면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 한다.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주부들도 프로 정신으로 무장해 더욱 씩씩해졌으면 한다.
-이럴 때 결혼한 친구들이 부럽다.
▶박화=요즈음은 주말이면 전화기가 조용하다. 주중에는 바쁘게 살다가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자식을 잘 키우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전업 주부들의 모습은 보기 좋다. 또 직장과 가정일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을 보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허진=애들과 가족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부럽다. 몸이 아프거나 외로울 때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다.
▶박주=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마음대로 떠나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여행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혼자 먹어야 하는 것은 조금 쓸쓸하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치다꺼리하고 희생하는 힘겨움에 비하면 이런 쓸쓸함은 작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가끔은 혼자라는 것이 외롭기도 하다.
▶이민=직장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살림 사는 주부들이 부러워진다. 아주 가끔이지만.
-싱글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면.
▶박주=나이를 먹어도 두려움 없이 온화하고 부드럽게 늙어가고 싶다. 아직도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모든 걸 도와주시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 올 것이다. 혼자 있을 때를 대비해 사회적 위치를 더욱 확고히 다지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박화=나이 들면 오히려 싱글의 삶이 더 수월할 것 같다. 내 나이의 다른 친구를 보면 손자 보랴 자식 뒤치다꺼리 하랴 여전히 바쁘다. 싱글의 노년은 오히려 평화로울 듯하다. 앞으로는 자식으로부터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환경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싱글들의 노년이 오히려 더 나은 것 아닌가. 자식이 있어도 외롭다면 없어서 외로운 것이 훨씬 위안이 되지 않을까.
▶이민=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죄송스러울 것 같다. 부모님의 연세가 70을 넘기니 딸 셋이 모두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큰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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