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대법원이 존엄사(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데 대해 각계 반응은 엇갈렸다. 연명치료로 억지로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시민들과 의사, 호스피스 활동가 등은 찬성 입장을 보였지만 종교계에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지역암센터 호스피스위원장 박건욱 교수(동산병원 혈액종양내과)는 "사실은 때늦은 감이 있다"며 "'의미없는 치료의 중단'은 이미 의료계 내부에서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암 말기 환자에게는 이미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 박 교수는 "이번 판결을 통해 의사들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대구시의사회 김제형 회장은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인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은 환자 본인은 물론, 의사와 가족들에게 큰 고통과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며 "객관적으로 존엄사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변호사협회 박정호 홍보이사는 "이번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의돼 왔던 존엄사 문제가 제도권에서 공식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이로써 의미없는 치료로 고생하는 환자 가족들과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면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의사들이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시민단체 대표들도 '인간답게 죽을 권리' 차원에서 존엄사 인정을 환영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의 은재식 사무국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인간답게, 품위있게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며 "우리 사회가 억지로 생명 연장을 하기보다 존엄사시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종교계에서는 '신중'을 강조했다. 김정우 대구가톨릭대 인성교양부장 신부는 "자연적인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존엄사의 권리는 가톨릭에서도 인정하지만, 앞으로 자의든 타의든 간에 무조건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거부하는 등 남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존엄사를 판정하는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 안락사로 오용될 소지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계에서는 "신의 권한에 대한 침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성명교회 정준모 담임목사는 "인간의 생명을 상황의 편리에 의해 다룬다는 것은 신의 권한을 침범하는 행위"라며 "존엄사가 악용되고 남용될 경우 인간 생명의 존엄이 극단적으로 훼손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불교 조계종은 이번 결정이 법원의 개별 사례에 대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존엄사'에 대한 종단의 구체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기로 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고, 또 죽더라도 윤회한다고 보기 때문에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다만, 기계적인 단순 연명 장치를 제거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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