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으 심황후가 이 말을 다 듣고 있을 이치가 있으리오마는, 소리를 허니 일이 늦게 되었겄다'(아니리)
심황후 기가 막혀 산호 주렴을 걷혀 버리고 보신발로 우루루루루루루루루.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부지!" 심봉사 깜짝 놀래, "아니, 누가 날다려 아버지여? 에이? 나보고 아버지라니? 이 말이 웬 말이여!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삼년이 되됐는디, 누가 날다려 아버지여?" "아이고 아부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불효여식 심청이가 살어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저를 급히 보옵소서. 아이고, 아부지." 심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어쩔 줄을 모르는구나. "에? 아니, 심청이라니? 청이라니? 이게 웬 말이여? 에이? 이게 웬 말이여? 내가 지금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창)
"얼씨구" "좋다" "잘헌다" "그렇지" "아먼"(추임새)
소리꾼(창자·광대), 고수, 청중이 어우러진 판소리. 소리꾼이 창을 하면 고수는 곁에서 북으로 장단을 치며 추임새를 넣는다. 청중도 추임새를 함께하며 흥을 돋운다. 소리꾼은 장단에 맞추지 않고 평상시처럼 이야기(아니리)를 하고, 부채 따위를 써서 가락이나 사설 내용에 따라 동작(너름새, 발림)을 취하기도 한다. 빼어난 너름새는 청중들을 휘어잡는다.
선조들의 삶과 얼을 잘 드러내는 가장 한국적인 음악, 판소리이다. 조선 중기인 18세기 초에 발달해 19세기 말에 전성기를 이룬 판소리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고, 2003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됐다.
거칠고 탁한 목쉰 소리,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야 좋은 소리로 불린다. 바로 '곰삭은 소리'다. 또 성량이 크면서도 낮은 소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성음의 다양성이 청중에게 호소력을 더한다. 자기만의 독특한 발성기교(목재치)와 음색도 요구된다.
정순임씨는 판소리 명창이다. 그는 2007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를 둘러싼 집안은 그야말로 '국악 명가'라고 할 수 있다. 그 소리는 1세대인 큰외조부 장판개(예명 장학순), 외조부 장도순을 시작으로 2세대인 외숙 장영찬(본명 장주찬), 어머니 장월중선(본명 장순애)을 거쳐 본인까지 3대 124년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악 작곡과 아쟁의 대가인 남동생 정경호씨,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 아쟁을 겸한 여동생 정경옥씨를 비롯해 조카와 조카 며느리, 외5촌 조카까지 무려 8명이 국악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판소리를 비롯해 국악 작곡과 편곡, 가야금 병창, 아쟁, 장단 북과 장구 등 소리, 기악, 전통 무용을 총 망라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2007년 이 집안을 '판소리 명가 1호'로 지정했다.
◆국악 명가의 탄생과 유래
판소리 명가의 시초는 정순임씨의 증외조부인 장석중(예명 장문근)으로, 판소리와 거문고, 피리의 명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상 명창으로 대를 잇기 시작한 이는 큰외조부 장판개와 외조부 장도순이었다. 장판개는 고종황제로부터 종9품인 혜릉참봉의 교지를 받아 판소리 국창(어전명창)으로 불렸다. 장도순 또한 판소리 명창으로, 당대 여성 소리꾼 이화중선의 스승이기도 했다. 외조고모 장수향도 가야금 명인이자, 전통무용에서 천부적 재능을 발휘했다.
장판개의 아들과 장도순의 딸인 장영찬과 장월중선 역시 판소리 명창이었다. 특히 정순임씨의 어머니 장월중선은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은 물론 가야금과 거문고 산조, 아쟁산조, 살풀이와 승무 등 소리, 기악, 전통무용을 두루 섭렵했다. 장월중선은 1993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전남 곡성이 고향인 그는 서울과 목포 등지에서 극단활동, 후진양성 등을 하다 1966년 경주에 자리를 잡고 국악의 전승·보급에 힘을 쏟았다. 1998년 작고할 때까지 경주에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을 뿌리내린 장본인이다.
장월중선에게서 판소리를 사사한 정순임씨는 서편제 '심청가', 동편제 '흥보가' '수궁가' 등을 수차례 완창하고, 창극 '수궁가' '구운몽' '흥보전'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유관순 열사가' 등을 연출하고 지휘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남동생 정경호씨는 아쟁과 국악 작곡의 대가다. 현재 '장월중선 아쟁산조보존회' 회장, '정순임 민속예술단 세천향(世天香)'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서울 국립국악원 단원인 여동생 정경옥씨 역시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 아쟁 등에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선보이고 있다.
◆명가 전통을 잇는 후손들
정순임씨의 판소리 명가는 다른 집안과 달리 전통의 맥을 단단히 이어가고 있다. 작고한 1, 2세대에 이어 3대와 4대 대다수가 문화예술가이다. 장월중선의 오빠 장태화와 그의 두 아들만 국악과는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작곡자인 장태화는 대구MBC관현악단 단장을 지냈다. 또 그의 큰아들 장진호씨는 지난해 서라벌여중 음악교사로 정년 퇴임했고, 둘째아들 장진경씨는 현재 한국미술협회 경북지회장을 맡고 있다. 국악을 전공하지 않았을 뿐 서양음악과 미술 등 문화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장진호씨의 아들 형규씨, 장진경씨의 딸 윤지씨는 모두 동국대 국악과를 졸업한 뒤 각각 판소리와 아쟁을 전수받으며 국악 명가 4대의 맥을 잇고 있다.
정순임 명창의 조카 정성룡씨도 동국대 국악과를 졸업한 뒤 전주 조용복씨에게서 소리 북을 사사했고, 1998년부터 고모로부터 판소리를 전수받고 있다. 현재 '세천향 민속예술단' 사무국장이다. 정성룡씨의 아내 권문경씨도 인제대 국문학과를 다니며 국악동아리 활동을 했으며, 전통무용, 사물놀이, 아쟁 등을 통해 국악 명가 며느리의 길을 걷고 있다. 중앙대 국악과를 올해 졸업한 정순임 명창의 또 다른 조카 이규용씨도 장단 장구와 소리 북, 사물놀이, 아쟁 등의 기예를 펼치는 국악 명가의 후손이다.
◆명가의 특징과 활동
정순임 명창을 비롯한 국악 명가의 후손들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동생 정경옥씨를 제외하고 모두 경주에 뿌리내리고 있다. 장판개-장도순-장영찬-장월중선-정순임으로 이어지는 판소리 명창의 맥과 국악의 보존·전승을 통해 천년 고도 경주에서 예술과 문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있는 것. 어전 명창을 비롯한 5명의 판소리 명창, 무형문화재 2명, 4대째 이어오는 전통 소리의 전승, 14명의 국악인 집안, 소리와 기악과 전통 춤을 망라한 완벽한 조화 등이 이 명가의 특징이다.
이들 명가의 후손들은 2007년부터 '세천향민속예술단'의 단원이 돼 매년 경주에서 창극이나 기획공연을 통해 국악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정순임 명창은 5월 30일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개관기념 '판소리 명창 공연'을 펼 예정이다. 남동생 정경호씨는 현재 흥보가를 현대적으로 편곡, 7월 말 공연 예정인 경주시립극단 '흥보가 마당극' 음악감독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세천향민속예술단'을 비롯해 '다연소리청' '판소리흥보가보존회' '장월중선아쟁산조보존회' '신라국악예술단' '서울 국립국악원' 등 명가 후손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몸담고 있는 단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정순임·정경호 남매는 특히 창작판소리, 마당극 및 창극 판소리 작·편곡 등을 통해 전통의 현대화를 위한 시도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 정순임 명창이 말하는 국악
정순임(67·경주시 성건동) 명창은 "제대로 된 소리는 거칠면서도 내장 근육을 단련시켜서 나오는 소리"라고 말했다.
정 명창은 이를 위해 "3일만 소리를 하지 않아도 생목소리가 나온다"며 "매일 2시간 이상씩 소리를 해야하고 제자들에게도 이를 강조한다"고 했다.
소리꾼이 좋은 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복식호흡 ▷내장근육 단련을 위한 등산 ▷따뜻한 목 유지 ▷목과 몸의 안정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카이자, 판소리 제자인 정성룡씨도 "매일 적어도 30분 이상 소리를 해 목을 풀어줘야 하고, 목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잘 지키지 못하면 선생님으로부터 질책을 받는다"고 말했다.
정 명창은 전통문화의 계승과 함께 판소리의 대중화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처럼 판소리와 국악의 전통을 대대로 이어오는 집안이 거의 없다"며 "국악의 전통과 맥이 제대로 계승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창극의 활성화, 한국적 전통의 현대화 등을 통해 국악이 국민들에게 더 다가서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명창은 "집안에서 연출, 소리, 기악, 전통무용 등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매년 1, 2차례 경주에서 창극이나 기획공연을 갖는데, 앞으로 더 활발한 활동을 통해 경주뿐 아니라 대구·경북 나아가 전국적으로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이채수기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