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요갤러리] 레우키포스 딸들이 납치

▨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작가: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제작연대:1618년

재료:캔버스 위에 유채

크기:222×209㎝

소재지: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독일 뮌헨)

17세기 유럽미술의 대부분을 석권한 바로크 양식의 창시자가 카라밧지오라면 그 완성자는 루벤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남유럽의 이탈리아 화풍과 북유럽의 플랑드르 화풍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던 때이다.

카라밧지오가 플랑드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탈리아 화가인 반면에 루벤스는 플랑드르 출신으로서 이 지역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이탈리아 양식을 수용한다. 1600년에서 1608년에 이르는 이탈리아 체재 기간에 그의 화풍은 결정적인 변화를 맞는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성기 르네상스, 그 중에서도 특히 미켈란젤로의 역동적인 데생과 티치아노의 화려한 색채, 그리고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바로크 화풍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플랑드르 전통과 융합시켜 장엄, 화려, 역동성 등으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을 완성시킨다.

이 작품은 그의 전성기 시절, 신원 미상의 한 주문자의 부탁으로 제작한 것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들 카스토르와 폴룩스가 레우키포스 왕의 딸들인 힐라에이라(기쁨)와 포이베(화려함)를 결혼식장에서 납치하다가 죽음으로 결말을 맺는,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작가가 그림의 내용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며, 단지 웅장하고 역동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데 적합할 뿐만 아니라 여인 납치가 당시 유행하던 소재이기 때문인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조형적 특징은 X자 구도이다. 엄격한 구축성을 근간으로 하는 피렌체 화파와는 달리 역동성을 중시하던 베네치아 화파에서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본 것처럼 비스듬한 사선 구도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러나 루벤스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화면을 X자로 구성하면서 역동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한편 인물과 말들의 형상이 그 방향성에 의해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는 원(圓)을 이루게 하여 역동성을 강화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분리시키지 않으면서도 대상들을 각자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여인들의 탄력 있는 아름다운 살결, 거칠고 검은색의 남자들 피부, 힘찬 근육에 윤기 있는 말 등의 치밀한 묘사에서는 플랑드르의 자연주의 전통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인체의 웅장한 데생에서는 미켈란젤로를, 풍부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색채에서는 티치아노를, 화면 전체를 하나로 엮어 주는 팽팽한 긴장감에서는 카라밧지오를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의 영향이 각각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융합해 하나의 통합된 양식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흔히 볼 수 있는 절충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고 생기 있는 색채와 웅대한 구도에 박진감이 더해진,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창조적인 작품인 것이다. 권기준(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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