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도시, 한나라당 깃발만 들고 오면 모조리 당선되는 곳이라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는 대구. 정말 대구는 변하지 않았을까.
IMF 구제금융 도입 직전인 1997년 대구의 정계(국회의원), 관계(기초자치단체장), 재계(대구상공회의소 상공의원)와 현재의 정·관·재계를 비교·분석해봤더니 대구는 아주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특히 정·관계의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재계는 산업구조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1997년 IMF 직전까지 대구를 주도하던 세력은 섬유와 건설이었지만 지금은 대세가 아니다.
정·관·재계에서 주도권을 쥔 이들의 변화상을 살펴보면 대구의 변화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권력구도나 자금의 흐름이 어디를 중심으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경북고-서울대'로 대변되던 정계, 여전히
1997년 당시 대구를 지역구로 한 국회의원은 모두 13명.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대구지만, 1996년 15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 깃발을 들고 당선된 사람은 강재섭 전 의원과 김석원 전 의원이 유일했다. 자민련이 8명, 무소속이 3명이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이들 중 여전히 국회의원으로 남아있는 이들은 박종근, 이해봉 의원.
그때 국회의원 13명의 평균 연령은 만 57.4세로 전전(戰前)세대인 1939~1940년생의 전성시대였다. 최고령이 72세였던 박준규 의원(1925년생)이었고 최연소는 49세였던 강재섭 의원이었다. 강재섭 전 의원은 1948년생. 1940년생들의 경우 중학교 입학시험, 고등학교 입학시험까지 체험한 세대로 출신학교가 곧 그 사람의 신분으로 직결됐다.
이 때문에 13명의 국회의원들 중 경북고 출신이 9명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안동고(박구일 의원), 영남고(서훈 의원), 영천고(이의익 의원·경북고 수료 후 졸업은 영천고), 서울고(김석원 의원)이 비경북고 출신이었다. 출신 대학도 서울대 출신이 7명으로 절반 이상. 육사(김복동 의원), 해사(박구일 의원), 경북대(서훈 의원), 영남대(백승홍 의원), 성균관대(이의익 의원), 서강대(김석원 의원)로 각 1명씩이었다.
출신지역은 대구·달성 출신이 9명으로 다수였다. 안동(이의익, 박구일 의원), 선산(이정무 의원), 예천(안택수 의원)도 있었지만, 대구·경북이라는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된 지역 내라는 점에서 큰 구분은 의미가 없을 터.
반면 12년 후인 현재는 어떨까. 대구를 지역구로 한 국회의원은 모두 12명. 달서구의 선거구는 하나 늘었지만 중구와 남구가 하나의 선거구로 통합되고, 서구가 2개의 선거구이던 것이 하나로 되면서 전체적으로는 1석이 줄었다. 하지만 '경북고-서울대'로 대변되던 정계의 카르텔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12명의 출신고등학교를 살펴보면 경북고 출신이 6명으로 절반을 차지하지만 서울사대부고(홍사덕 의원), 대구고(이명규 의원), 경기고(서상기 의원), 능인고(주호영 의원), 청구고(조원진 의원), 성심여고(박근혜 의원)로 다소 다양화됐다.
출신대학에서는 12년 전과 큰 변화가 없다. 서울대 출신이 6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영남대(이명규, 주호영 의원), 고려대(주성영 의원), 성균관대(배영식 의원), 한국외대(조원진 의원), 서강대(박근혜 의원)가 뒤따라 포진했다.
출신지역도 큰 변화는 없다. 박근혜 의원만 서울 출신. 현재 국회의원들의 평균연령도 58.6세로 12년 전에 비해 1.2세 늘었지만 큰 변화는 아니다. 다만 전후세대인 1950~1951년생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달라진 점. 하지만 이들 역시 고교 평준화 이전 세대로 12년 전 세대와 큰 차이는 없다.
◆'경북고 출신이 아니면 대구시장은 꿈도 꾸지 말라'던 관계
'차기 민선 대구시장도 문희갑·조해녕 시장처럼 경북고 출신이어야 한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당위원장이었던 안택수 전 의원은 대구시장 출마 채비를 하고 있던 서상기(당시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원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자, "경북고 출신이 아니어서 곤란하다"는 요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져 구설에 올랐다.
실제로 그럴까. 첫 민선 시장과 구청장으로 뽑힌 이들이 활동하던 12년 전과 지금. 우연의 일치인지 대구시장은 경북고 출신들의 독차지였다. 문희갑, 조해녕, 그리고 현 시장인 김범일 시장까지 모두 경북고 출신.
반면 기초단체장의 경우 경북고의 장악은 눈에 띄게 적었다. 1997년 대구의 8개 구·군 수장들 중 경북고 출신은 단 2명. 대구고와 대구상고 출신도 2명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른 분포인 셈. 출신 대학의 경우 서울대 치과대학 출신의 이재용 전 남구청장이 유일한 서울대 출신이었고, 나머지는 영남대(3명), 경북대(2명), 대구대(1명), 경일대(1명) 등 지역대학 출신이었다.
출신지역도 제 각각이다. 대구·달성이 3명, 영천, 경주, 상주, 예천 등 경북 일대가 각 1명씩. 여기에 경남 출신이 2명 있다는 게 눈에 띄는 대목. 거창(오기환 전 동구청장), 합천(강현중 전 중구청장) 출신이 있었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 부산보다 대구와 가까운 거창, 합천 등 경남 북부지역 사람들은 자녀들을 대구로 '유학'보낸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56세로 정계의 평균연령인 57.4세와 크게 차이가 없다. 당시 최연소 구청장은 이명규 전 북구청장(1956년생·현 국회의원)으로 41세에 구청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최고령은 오기환 전 동구청장으로 1932년생, 65세였다.
12년 뒤인 현재는 어떨까.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 사람만 바뀌었을 뿐 12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출신고교는 확연히 달랐다. 경북고, 대구고, 대륜고, 계성고, 달성고, 사대부고, 대구농고, 상주여고로 모든 단체장의 출신학교가 달랐다. 이는 '뺑뺑이 세대'로 대변되는 1959년생들의 약진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대구의 기초단체장 중 나이가 가장 적은 동구청장과 수성구청장의 경우 고교 평준화 1세대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55.9세. 출신지역도 모두 대구·경북 일원이다. 출신대학도 12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고려대 출신의 곽대훈 달서구청장과 이종화 북구청장만 예외일 뿐. 나머지 6명은 모두 지역대학 출신이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밥줄, 재계. 섬유·건축 하향세 두드려져
지난달 한 온라인 리쿠르팅 업체가 국내 대기업 임원 2천723명의 평균연령을 조사한 결과 만 51.7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주 퇴직 대상이 되는 나이대는 1957년~1959년생으로 만 50~52세에 해당한다.
대구의 재계는 어떨까. 대구상공회의소의 상공의원들을 표본집단으로 분석해봤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12년전 54.6세에서 현 55.9세로 약간 올랐다. 출생연도 이외의 요소는 부분적 분석만 가능했다. 정·관계와 달리 개인적인 정보라는 점을 이유로 재계에서는 출신고교와 출신대학, 출신지역을 알기 어려운 경우도 적잖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개된 정보만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1997년 당시 16대 대구상의와 2009년 현재 20대 대구상의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우선 16대 상공의원 중 20대에도 이름을 올린 상공의원은 12명(이인중-화성산업, 함정웅-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정태일-한국OSG, 이충곤-에스엘, 김동구-금복주, 석정달-명진섬유, 구정모-대구백화점, 김상태-평화발레오, 한재권-서도산업, 채용희-내외건설, 손영대-삼양주유소, 홍종윤-비에스지)에 불과했다. 특히 섬유·건축을 중심으로 대세를 이루던 1997년 대구 경제는 IMF 구제금융 이후 체질이 바뀌었다. 16대 대구상의 상공의원 60명의 당시 업종을 살펴보면 전체의 3분의 1인 21명이 섬유였다. 건설이 10명, 기계·금속은 8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20대 상의 상공의원 112명은 기계·금속 28명, 섬유 17명, 유통 11명, 건설 7명, 전기전자 6명, 금융 3명, 전문·과학기술서비스 3명, 기타 37명 등으로 비율면에서나 물리적 수치면에서 기계·금속이 부상했고, 섬유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출신학교는 정·관계와 달리 제각각이었다. 16대 의원중 출신고교를 알 수 있었던 32명 중 5명(손영대-삼양주유소, 박찬희-협립제작소, 김을영-서한, 민성재-금강화섬, 김상태-평화발레오)이 계성고 출신이었다. 성광고와 경북고가 각 3명씩이었다. 출신대학은 38명의 정보가 공개된 상태. 이중 영남대가 8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대 5명, 서울대·고려대·한양대가 각 4명씩이었다.
반면 현재 대구상의를 끌어가고 있는 20대 상공의원 중 출신고교를 공개한 41명의 경우 9명이 계성고 출신이었다. 경북고와 대구상고가 각 4명, 사대부고 3명 순이었다. 출신대학은 영남대의 강세가 여전했다. 13명이 영남대 출신이었고, 연세대 6명, 중앙대 5명 순이었다.
출신지역은 대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16대 상공의원 중 출신지역이 공개된 44명은 대구(22명), 성주(4명)순이었으며 합천, 밀양 등 경남 출신도 적잖았다. 이는 1997년 관계에서 보이는 특징과 비슷한 부분. 이는 20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출신지역이 공개된 58명 중 29명이 대구 출신이었다. 영천, 상주가 각 3명, 김천, 안동, 구미가 각 2명씩이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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