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3일째를 맞은 25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은 충격이 다소 가라앉은듯 차분한 가운데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안개가 내려앉은 봉하마을은 이른 아침부터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봉하마을 입구부터 빈소에 이르는 도로 가드레일을 따라 국화꽃이 줄이어 꽂혀 있었고, 이른 시간임에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대형분향소로 향하는 가족 단위 조문객들이 적지 않았다. 취재진이 다시 밀려들자 노사모 등 일부 지지자들은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오전 9시부터 통도사 스님 100여명이 방문해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독경을 했다.
◆조문행렬 끝없이 길게=밤새 계속된 조문객의 행렬은 25일 오전 20만명을 넘어섰다. 휴일이었던 24일 조문객들의 행렬은 절정에 달했다. 경찰 통제가 시작되는 본산공업단지 입구부터 봉하마을까지 2.8㎞ 구간은 봉하마을을 오가는 조문객들로 어깨를 스치지 않고는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빈소로는 조문객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24일 오전 11시 40분쯤 장례준비위원회 측은 마을회관 앞에 대형분향소를 마련하고 조문객을 맞았다. 이해찬 전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영정을 대형분향소로 옮겼고, 아들 건호씨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 측근 인사들이 뒤를 따랐다.
조문객은 세살짜리 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검은 계통의 옷을 입은 조문객들은 국화를 손에 든 채 침묵을 지켰고, 마을 앞 노사모 자원봉사지원센터에 마련된 대형분향소 앞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와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사저까지 매달린 노란색 리본에는 '가슴 시리게 슬픕니다' '죄송합니다. 평안하게 쉬시길' 등 명복을 기원하는 글귀가 남겨져 있었다.
분향소 앞에 다다른 조문객들은 장례지원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정연하고 차분하게 조문에 임했다. 가끔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거나 '사랑합니다' '노무현 만세' 등을 외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조용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꽃을 바치고 묵념을 올렸다. 빈소 내에는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가 계속 자리를 지켰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이재용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세옥 전 청와대 경호실장,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등 전직 장관, 수석들이 순번을 정해 한 시간에 한번씩 교대하며 상주 역할을 분담했다.
오후가 들면서 추모 행렬은 더욱 길어졌다. 노 전 대통령 장례준비위원회는 추모객이 늘자 분향하는 조문객을 한번에 10명에서 40여명으로 늘렸지만 조문을 기다리는 행렬은 갈수록 길어졌다. 또한 분향소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 유가족과 김대중 전 대통령, 반기문 UN 사무총장 등이 보낸 조화 10여개만 세워졌다.
◆쏟아지는 비 맞고도 조문=봉하마을까지 오는 셔틀버스가 혼잡한데다 승용차 통행이 통제돼 조문객들은 거의 걷다시피해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1시간을 걸어온 뒤 40분 이상 줄을 서야 영정에 다다를 정도로 조문객 인파는 밀려들었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에는 갑자기 먹구름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져 조문객 대부분이 흠뻑 젖기도 했다. 일부 조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가시니 하늘도 슬퍼서 운다"며 오열하기도 했다. 그러나 퍼붓듯 쏟아지는 비에도 조문객들은 흐트러지지 않고 서로 우산을 씌워주며 조문행렬을 그대로 지켰다.
생전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거나 종교계 인사, 외국인 이주노동자 등도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 선배이자 김해중학교 시절 은사였다는 한 노인은 "무현아, 대부가 왔다. 넌 왜 말이 없느냐"라며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오전 9시 30분쯤에는 해인사 독경단 스님 350명이 대형버스 7대에 나눠 타고 도착해 반야심경 등을 독경하며 노 전 대통령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도 눈에 띄었다. 한국에 온 지 3년 됐다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스피쿨(42)씨는 "노 전 대통령의 강직한 성품에 반해 생전 존경했었다"며 "너무나 충격적이고 슬프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오후 7시가 넘어 사방이 어둑해지자 마을 입구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영상물이 상영됐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23일 오후 5시 20분쯤 경남 양산시 양산부산대병원을 출발해 6시 30분쯤 봉하마을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빈소가 차려진 마을회관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운구행렬을 따라 곳곳에서 오열이 터져나왔다. 운구가 끝나자 노 전 대통령 지지자 200여명이 빈소 앞에 앉아 촛불을 켜고 조용히 추도를 시작했고 장례 절차에 따라 염을 한 뒤 임시 분향소가 차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29일 김해시 진영읍 김해공설운동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 마을 전체가 하나의 장례식장=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마을 전체는 하루종일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진혼곡에 젖어 있었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등 느리고 무거운 추모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빈소 주변에 울리며 경건함을 더했다. 24일 오전 합천 해인사 스님 350명으로 구성된 독경단이 봉하마을을 찾아 천도제를 올린데 이어 25일 오전에도 양산 통도사 스님 300여명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달랬다. 26일에는 쌍계사, 27일 범어사가 차례로 추모법회를 열 예정이다.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마을 주차장은 수십개의 천막과 테이블로 가득 채워졌다. 낮은 상 앞에 모여앉은 조문객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한숨을 토해내거나 슬픈 표정으로 담담히 대화를 나눴다. 이따금 헌화를 마친 조문객들이 슬픔을 못이긴 채 엎드려 오열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일반 차량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3km 가량 떨어진 본산공업단지 삼거리부터 진영읍에 이르는 도로변과 공업단지 안은 주차된 차량들로 가득했다.
조문객이 몰려들면서 추모식장 한 쪽에 마련된 장례음식 부스 앞에는 허기를 면하기 위한 조문객들의 줄이 50m 넘게 이어졌다. 진영농협 주부대학 임원진과 김해시, 대한적십자사 회원 등 자원봉사자 500여명이 수십개의 솥을 걸어놓고 고깃국과 밥을 내놓기 바빴다. 그러나 조문객을 위해 준비한 2만명분의 국밥은 24일 오후 2시쯤 모두 동이 났고, 추가로 준비한 떡과 컵라면 수천여개도 삽시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대한적십자사 허기자(55·여) 김해지구협의회장은 "진영읍의 한 방앗간에서 밥을 계속 조달하고 있는데도 태부족"이라고 했다.
북적거리는 빈소 주변에 비해 마을 주민들은 외부와 접촉을 삼가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봉하마을 앞 논에는 모내기 작업을 중단한 채 세워둔 농기계와 트럭이 눈에 띄었다. 봉하마을 50여 가구 주민들은 24일 일제히 태극기를 조기 형태로 내걸었다.
주민들은 집집마다 조기를 내건 채 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이따금 조문객들이 문을 두드리며 말을 걸어도 차가운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 언론에 대해 강한 불만과 적대감을 표시한 이후, 태도는 수그러들었지만 언론과 대화 자체를 여전히 거부했다.
봉하마을에서 장성현·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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