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무겁게 받아들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발길이 전국에서 줄을 잇고 있다. 서거 이틀째인 어제까지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는 17만 명이 조문을 다녀갔다고 한다. 국민장으로 치러지는 29일 영결식까지 정부가 설치한 전국 100여 곳의 분향소에는 추모행렬이 꼬리를 물 것이다. 각계에서도 애도 메시지를 발표하고 각종 축제와 행사도 자제하는 무거운 분위기다. 온 나라가 한때 국민과 애환을 함께한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서거를 애틋해 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아침에 전해진 노 전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 소식은 온 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상상할 수 없는 자살 소식에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부패 스캔들로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놀라움이었다. 5년 동안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고 국가의 명운을 책임졌던 국가지도자가 극단의 선택을 한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망연한 슬픔들이었다.

지난달 22일 인터넷 홈페이지마저 폐쇄할 당시 그는 "도덕적 파산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피의자의 권리는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정상문 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이 되는 마당에 할 말이 없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할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투신하기까지 한 달 동안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가 겪었을 심적 고통을 짐작하고 남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63년에 걸친 삶은 파란만장했다. 인권변호사와 민주투사로 활약했고 지역주의를 넘기 위해 패배가 뻔한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소수'비주류의 길을 걷던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오른 것은 깨끗한 정치와 지역주의 극복을 바라는 국민 염원이 결집한 덕분이었다. 민주화, 지역구도 타파, 정경유착 단절, 남북관계 개선, 서민경제 건설 등을 위해 대통령으로 열정적으로 행동하고 과감한 정책을 폈다. 脫(탈)권위적인 노 전 대통령 모습은 국민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노 전 대통령 재임 5년은 한편으로 국민의 마음을 아우르지 못한 채 원칙과 소신에만 의존하는 국정 운영으로 갈등과 혼란으로 점철했다. 재신임 선언, 대통령 탄핵 등 파란의 정치였다. 재임 중엔 측근들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고 퇴임 후엔 역대 대통령으론 세 번째로 검찰에 출석해야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극적 말로를 걷는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국민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것은 '부하 총질'(박정희) '뇌물부패'(전두환 노태우) '아들 비리'(김영삼 김대중) 같은 전직 대통령들의 비참한 최후가 또 발생했다는 자괴감이다. 전직 대통령이 국가원로로서 나라 발전에 힘을 보태기는커녕 국민에 부담을 지우게 하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 부끄러운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를 되돌아보는 화두로 삼아야 한다. 1인 권력집중의 대통령제, 권력과 금력의 결탁, 이념과 정파 간 적대감, 신구 권력 간 정권 이양 갈등 같은 우리 정치의 고질적 과제들을 성찰하는 계기여야 하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에서 그러한 자각과 노력이 불붙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정치만이 겪고 있는 권력의 불행한 종말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어제 봉하마을을 찾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노사모 회원들이 물을 끼얹으며 내쫓는 바람에 오늘 새벽에 다시 찾아가 가까스로 조문을 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심상찮은 반발 분위기에 밀려 발길을 돌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부수어져 다시 보내는 일이 벌어졌다. 정치의 세계는 본디 대립하는 것인데 그걸 이유로 조문마저 막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한 고인의 유언에도 맞지 않는 행동들이다.

온 국민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엄숙하게 애도하는 국민장이어야 한다. 모두 협조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편안하게 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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