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방도 함께 잘사는 나라, 그렇게 꿈꿨건만…

미완의 과제로 남은 '국가균형발전'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중앙과 지방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야 합니다. 지방은 자신의 미래를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중앙은 이를 도와야 합니다. 저는 비상한 결의로 이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 한 구절이다. 시골 출신 노 전 대통령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갈망했다. 지방자치연구소 시절부터 잉태된 지방을 영원한 변방이 아니라 국가 발전의 중심으로 만들려는 꿈은 취임사에서 나타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방분권을 얘기했으나 이를 몸으로 실천한 사람은 노 전 대통령뿐이란 게 지방분권운동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노 전 대통령의 지방 중시 정책은 조각에서 드러났다.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며 성공한 잘나가는 인사들이 아니라 지방에 뿌리박고 지방민과 함께 호흡한 인사들을 대거 등용했다. 이장 출신의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 지방대학 총장 출신의 윤덕홍 교육부총리, 지방대학 교수 출신의 권기홍 노동부장관. 그 뒤 이어진 개각에서도 지자체 부단체장 출신의 오거돈 해양수산부장관, 구청장 출신의 이재용 환경부장관을 발탁했다.

이 때문에 웃지 못할 희극도 연출됐다. 각 부처가 장관 관사 마련 문제를 놓고 고심한 것. 이전에는 서울에 있는 집에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장관 관사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장관은 직접 돈을 내 거처를 마련했고, 어떤 장관은 부처 돈으로 집을 마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이처럼 지방 인사를 중시한 것은 그들이라야 진정한 지방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신은 3대 지방분권 특별법 성안으로 이어졌다. 2003년 12월 29일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그것이다. 정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했고, 3대 특별법 통과로 지방을 잘살게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시작됐다.

하지만 수도권의 저항은 거셌다. 경기도와 서울시가 신행정수도 건설에 반기를 들었다. 연일 집회가 열렸고 그 귀결은 헌법재판소가 됐다. 헌재는 성문헌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지만 불문헌법을 들어 신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란 새로운 법적 논리가 나왔다.

꺾였던 노 전 대통령의 꿈은 청와대를 이전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슬쩍 피하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란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행복도시로 명명된 공주연기 프로젝트가 그래서 이뤄졌다.

지방분권도 저항에 부딪혔다. 지방에 결정권을 주기 위한 권한 이양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부분적으로 이뤄졌지만 돈과 사람과 기업을 지방에 주기 위한 2단계 지방분권은 관련법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선언에 그쳤다.

국가균형발전의 꿈은 혁신도시, 기업도시 건설로 이루려 했지만 지방 간의 분열로 힘겨웠다. 각 지자체가 더 나은 공기업을 유치하려 투쟁했고, 각 기초지자체가 자기 지역에 혁신도시를 유치하려 이전투구를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이 이루려 했던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의 꿈은 지금도 색채는 다르지만 이어지고 있다. 그가 대못질을 해서 그런 측면도 있고 새 정부 역시 지방을 내팽개치고는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는 측면도 있어서다.

하지만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지지부진하고, 혁신도시 건설도 탄력을 받지 못하는 등 위축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게 지방의 인식이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집행위원장은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구호는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 되는 가치"라고 말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지방이 대우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고, 우리가 이뤄야 할 미완의 과제로 남겨진 셈이다. 최재왕·이상준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