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불온서적

靑(청)의 好學(호학) 군주 乾隆帝(건륭제)의 명으로 편찬된 230만 쪽, 10억 자의 四庫全書(사고전서)는 '동양사상의 기념비적 집대성'이란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편찬의 진짜 목적은 吹毛求疵(취모구자'털어서 먼지 찾기), 즉 사상 검열에 있었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1770, 80년대에 중국을 흔든 대규모 검열 내지 탄압 운동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라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캐링턴 굿리지 같은 학자는 1935년에 쓴 '건륭제의 문자 탄압'에서 "대규모로 이뤄진 (선동적인 책들에 대한) 체계적 조사는 어쩔 수 없이 탄압과 관련이 있었다"며 탄압 운동이 실제로 이뤄졌음을 입증했다. 20세기 중국의 학자들도 여기에 동조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족 민족주의' 입장에서 만주족 황제의 업적을 폄훼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분명한 증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편찬 과정에서 2천400여 종 이상의 책이 파괴되고 400∼500종의 책이 황제의 공식 명령에 의해 '개정'됐기 때문이다. 이런 운명을 맞이한 책은 대부분 反滿的(반만적) 저술이었다.

건륭제가 그렇게 한 이유는 청이 대륙을 지배한 지 한 세기가 넘었으나 만주족에 호의적이지 않은 불온서적이 여전히 널리 퍼져 있었고 이는 정치적으로 큰 위험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건륭제의 말은 이 같은 걱정을 보여준다. "明末(명말)에는 검증받지 못한 역사서들이 매우 많았고 그런 책 중에는 작자의 편견에 따라 무언가를 비방하고 지나치게 찬양적인 문구가 많이 있다. 뜬소문과 엉터리 이야기 속에 반드시 우리 왕조를 비방하는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사고전서', 켄트 가이) 통치술이라는 측면에서 건륭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호학 군주의 풍모 뒤에 문화 파괴자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7월 국방부가 '나쁜 사마리아인'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규정해 군내 반입을 금지한 데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이 25일 열렸다. 판단은 헌재가 하겠지만 21세기 개명천지에 불온서적 시비가 일고 있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 책 몇 권 때문에 군대가 유지될 수 없다면 그런 군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필자도 군 복무 시절 그보다 더한 불온서적을 봤으나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국방부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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