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5」/ 진이정

나는 더 이상 젊은 시인이 아니로다

오랜만에 가로수에 몸을 기대고, 밥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가로수의 피부가 너무나 낯익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로수는 내게 물었다; 왜 이제야 돌아왔느냐고

나는 몸이 다 망가졌기 때문에 돌아왔다고 했다

가로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밥이 꺼졌다

내 인생도 꺼졌다

오늘 죽은 시인을 말하고 싶다. 요설의 상상력이라는 용어를 진이정의 약력에 덧붙이고 싶다. 죽음 앞의 담담함을 먼저 생각나게 하는 이 시가, 진이정이 스스로 죽음의 기미에 몸을 맡기고 씌어진 후일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나는 떠도는 자이므로, 피사 사탑의 기울기에 인생을 걸 것이다"로 인식한 사람의 자의식이 있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연작들은 모두 비꼼과 뒤틀림이라는 언어의 병렬로 이루어져 있다. 한 평론가가 진이정의 시에 대해 지적한 "시적 화자는 자신의 진술을 고결하게 포장하려는 태도를 배제한다"에 진이정의 시학이 있다. 진이정의 요설은 논리의 담론이 아니다. 논리 체계는 아니지만 그 담론의 분석은 이미지의 연결로 가능하다. 그 요설은 별개의 불온한 이미지들의 충돌이다. 그 별개의 이미지야말로 진이정이 바라보는 현상계이다. 밤하늘의 별들 하나하나가 밤하늘이 아니라 흐린 별들의 집합이 밤하늘의 이미지인 것처럼 그의 시의 행간은 필연적으로, 그러나 서로 중력 없이 그렇게 떠 있다. 진이정 시의 이해를 위해 요설의 의미를 되짚을 필요가 있다. 요설의 밑그림은 비틀림이다. 문학의 역사에 요설이 등장한 것은 진지함이 무거워지거나 진지함이 가짜인 시공간일 경우일 때이다. 비틀림과 비꼬임 모두 진지함을 견디지 못한, 아니 진지함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부정의 정신에서 드러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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