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욱의 달구벌이야기]18. 진골목

석재 서병오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숱한 일화를 남긴 팔방미인이었다. 만석꾼의 자제로 시(詩)'서(書)'화(畵)'문(文)'금(琴)'기(碁)'박(博)'의(醫)에 능해 팔능거사(八能居士)라 불렸으며, 그 가운데서 시가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그 같은 다재다능함은 널리 알려졌으며 당시 실권자였던 흥선대원군이 그의 뛰어남을 듣고 불러들여 아끼었다고 한다. 그 같은 인연으로 대원군으로부터 석재(石齋)라는 호를 받았는데 '석재는 돌로 지은 집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너의 재능을 깨뜨릴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문사들을 만나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 그 때 추사 김정희와 사제 관계가 맺어졌으며, 스승의 높은 예술 세계를 가까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말년까지 추사의 세계에 몰입하여 작품 속에 그의 흔적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그로부터 글씨를 배운 제자들이 많았는데 죽농 서동균(徐東均)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또한 뒤에 동아일보를 창업한 김성수가 찾아와 제자 되기를 청하자 인촌(仁村)이란 호와 시를 지어 주었다고 전한다.

진골목의 명소 가운데 미도 다방을 빼놓을 수 없다. 담수회 회원들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많이 드나들어 '양반 다방'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가 있고, 박준규 전 국회의장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가끔 찾는다. 그 밖에도 한 시절 이름을 날리던 정치인'공직자'기업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단골이던 시인 전상열은 타계 직전 지역신문에 '미도 다방'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그리고 주인 정인숙은 나이 드신 분들로부터 이 시대의 '진정한 마담'으로 통한다. 그와 함께 단골 손님들의 길흉사며 문병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부지런함으로 해서'정 여사'라는 존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종로2가 미도다방에 가면/ 정인숙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꽃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 장마철에 꺾인 상처 이야기도 하고/

익어가는 가을 열매 이야기도 하고/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 종로2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잔 값의 추억을 판다/ 가끔 정여사도 끼여들지만/ 그들은 그들끼리

주고받으면서/ 한 시대의 시간벌이를 하고 있다

- 미도다방/ 전상열

그 밖에도 이름난 곳이 많이 있다. 육개장으로 널리 소문난 진골목식당, 30년 전통의 보리밥식당, 한 시절을 풍미했던 요정 백록, 오래된 일식집으로 종로초밥과 미성회초밥 같은 맛집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전통 한옥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들 건물은 구한말에서 일제시대까지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골기와 한옥들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오래 버려 두면 안 된다. 주변의 다양한 풍물과 먹을거리, 그리고 이웃한 종로와 약전골목을 연계해서 개발하면 특색 있는 관광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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