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니아와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여행의 기술 세 가지

서울의 지하철에서 옆자리의 누군가가 "오늘 날씨 참 좋죠?"라고 물어오면 '이상한 사람 아니냐?'라고 생각할 것이다. 버스정류장에서, 공원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아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더욱이 서울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해야 "저기요, 지금 몇 시죠?" 정도.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한국인에겐 참 어렵다. 특히 혼자 떠나는 첫 여행에서 이것만큼 큰 숙제가 없다. 아침에 유스호스텔 샤워실에서 부딪히는 낯선 외국인이 "헬로?" 인사를 해오면 깜짝 놀라 "헬로…" 머뭇머뭇 화답하거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이 갑자기 "날씨 참 좋죠?"라고 말을 걸어오면 "예스…"라고 겨우 입을 떼며 웃음으로 얼버무리길 여러 번.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먼저 "헬로?"라고 말을 걸게 되는 순간이 있다. 혼자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갑자기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싶기도 하고, 왠지 영어로 말을 거는 건 한국어로 말을 거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영어로 말을 거는 데에는 몇 가지 교과서 같은 법칙이 있다. "오늘 날씨 참 좋죠?"라고 말을 꺼낸 다음 "어디서 왔느냐?" "직업이 뭐냐?" "얼마나 오래 여행하고 있느냐?" 같은 기본적인 몇 가지 질문만 주고받으면 다음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주로 자신이 여행했던 곳에 대한 이야기, 자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등등 여행자들끼리는 이런 이야깃거리로 한두 시간은 거뜬히 대화할 수 있다.

여행은 멋진 풍경을 보는 것보다 멋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래서 멋진 친구들을 만드는 여정이 아닐까. 무언가를 보더라도 더 자세히 보고, 무언가를 느끼더라도 더 깊숙이 느끼려면 그것에 대해 가이드북에는 없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 그래서 여행지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들과 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여행을 즐기는 첫번째 기술은 마음을 열고 아무에게나 말 걸기.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긴 수염을 기른 무슬림 남자를 만나면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난 것처럼 그의 옷 안에 시퍼런 칼 하나쯤 감춰두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싸구려 가죽 잠바를 입은 흑인 남자가 흰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걸어오면 나도 모르게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왔던 길을 재빨리 되돌아가곤 한다. 더러운 담요를 뒤집어쓰고 거리를 헤매는 아프리카 거리의 아이들, 무지개색으로 염색한 뾰족머리에 얼굴에는 주렁주렁 피어싱을 하고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는 유럽의 백인 소녀들…. 여행을 하면 이제껏 살아온 나의 작은 세계에서는 한 번도 소통해본 적이 없는 종류(?)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도 말을 걸어볼 수 있을까.

먼저,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그들을 간단하게 이해해 보기로 한다. 단지 이렇게.

'그들은 나와 다르다.'

사람은 참 다르다. 여행을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가'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목격하게 된다. 나와 다르다는 것, 그 차이와 간극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는 순간 내가 여행하는 새로운 세계와 나는 소통할 수 없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걸 '휴머니티'라고 하는 게 아닐까. 여행을 즐기는 두 번째 기술, 나와 다른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긍정하기. 나와 달라서 재미난 것들을 즐기기. 나와 또 다른 점들을 탐색하기. 나와 다른 이유에 대해 공감하기.

미술관에 가면 전시실마다 지킴이가 있다. 전시실내 보안을 책임지고 관람객들을 안내하거나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루종일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 그림을 보러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척이나 지루해 보인다. 가끔은 미술관의 훌륭한 작품들보다 전시실 지킴이들의 소소한 표정의 변화, 눈빛을 관찰하는 게 더 흥미로울 때가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지키는 사람을 보는 건 반칙일까.

사소한 반칙을 저지르는 건 엉뚱한 즐거움을 준다. 기념품가게의 구석에서 먼지에 쌓여있는 낡은 물건 발견하기. 관광객이 북적이는 유적지 한쪽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꼬마들의 웃음 소리 듣기.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운전기사 아저씨와 사진 찍기.

여행을 즐기는 기술 세 번째, 여행지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 조금 더 삐딱하게 보기, 엉뚱하고 재미난 것 찾아보기, 사소한 즐거움 만들기.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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