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포괄적 뇌물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같은 혐의였다. 대통령이 받은 돈이 구체적 대가성이나 영향력 행사와 관계 없더라도 국정 수행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춰볼 때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만은 철저하게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로, 한국에서는 이 3명을 빼고는 한 번도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된 바 없다.
바꿔 말해 한국 사회는 그만큼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요구해 왔다. 정치 자금에 관한 법률(정치자금법)은 1965년 제정 이후 지금까지 20차례나 개정됐다. 돈 안 쓰는 정치, 돈 안 드는 정치, 돈 안 받는 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제한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문제가 생겼다.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의 3대 핵심 조항은 '후원회 행사 금지', '법인·단체 후원 금지', '모금 한도 제한'이었다. 정치자금법은 개정 당시엔 별 불만이 없었지만 막상 펼쳐보니 비현실적인 측면이 많았다. 정치 자금 모금이 우편으로 한정된 점, 정치 자금 상한선과 용처가 지나치게 제약된 점 때문에 개정 요구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한나라당 정치선진·혁신화특위위원장인 허태열 최고위원이 "정치가 현실을 도외시한 제도의 틀을 짜면 오히려 음성적이고 비리로 가는 것"이라며 "내년 지방선거를 타깃으로 해서 여러 가지 정치 자금과 선거 제도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을 시사한 점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고 섣불리 정치자금법을 손질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투명성을 너무 강조해 음지에서 거래가 생기고, 합법적 정치 자금도 보는 시각에 따라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 자금에 대한 규제를 풀 경우 소위 실력자들에게 권력과 돈이 몰리고, 정경유착 등 부패 고리가 끊이질 않게 된다. 검사 출신인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대구 동갑)은 "현행 정치 자금 한도액이 외국에 비해 적은 것이 아니다. 물론 한국 정치 현실상 어려움이 없진 않지만 (정치 자금이) 너무 남발될 경우 특정인에게 몰리게 되고 그만큼 부정부패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 틀을 유지하되 저비용 선거 운용, 저비용 정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자금법의 일부 규제를 현실성 있게 완화하고, 정치인 복리후생제도를 바꾸자는 의견도 나온다. 정치 자금 모금 측면에서 모금 상한액을 일부 완화할 필요가 있고, 지출 측면에서 기부금의 몇 % 정도는 융통성 있게 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자는 방안이다.
의원 세비 현실화, 3선 이상 국회의원에 대한 퇴직금 등 노후 생활 보장, 국회 내 의원 숙사 설립 목소리도 있다. 정치인이 정치 밖으로 나왔을 때 먹고살 수 있는 대책이 제대로 갖춰지면 정치 자금에 대한 불·탈법 행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시각이다. 정치 자금에 엄격한 규제 장치를 마련해 놓되 퇴임 후 각종 강연, 저술 활동과 정치 자금 목적으로 돈을 모으는 것을 당연시하는 미국식 방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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