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너희가 그림을 알아?" 권기철 개인전

▲ 권기철 작
▲ 권기철 작 '어이쿠! 봄 간다'

"붓을 들고 장미를 그리려는데, 막상 하얀 화선지를 대하고 나면 생각이 싹 달아나버려. 그때부터 내 그림이 아닌 거지. 그렇게 그린 장미는 더 이상 장미가 아닌 거야. 그건 작가를 속이는 것이고, 그림을 보는 사람을 속이는 거야. 붓에다 그림을 맡겨야지."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1927년 발견한 '불확정성 원리'가 떠오른다.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론. 이미 관찰자의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입자는 제 모습(또는 제 위치)를 잃고 만다. 화가 권기철(47)에게 그리려는 대상은 바로 이런 존재일 것이다.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작가는 '무작위성의 작위'와 '작위성의 무작위'를 추구한다. 순진무구한 아이의 그림처럼 아무런 의도 없이 그저 붓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작가는 말했다. 지극히 의도적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마치 휘갈긴 듯 그려진 그림, 아울러 미친 듯이 춤추는 붓의 춤사위에 맡겨둔 듯하지만 고도의 의지가 개입된 그림을 그는 원했다.

권기철의 그림에는 '조롱'과 '비웃음'이 내재돼 있다. 자신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마치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고 외쳤던 누군가처럼 작가는 '너희가 그림을 알아?'라고 고함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월감에서 잉태된 것이 아니다.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지독한 작가 정신 때문이다. "어느 시대이고 날이 선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거든. 내 그림을 모든 사람이 알아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 하지만 누군가 알아준다면 그건 더욱 멋진 일이지. 신나잖아." 의도했건 아니건 권기철은 이미 유명 작가다. 조만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초대전도 열 계획이다. 권기철의 그림은 상상력을 자극하다 못해 끄집어낸다. 그의 최근작을 거꾸로 들고는 "이렇게 보는 게 더 멋있다"고 말하는 기자에게 권기철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그렇게 보든지. 네 맘대로 하세요." 그의 최근작 전시가 6월 1일부터 14일까지 갤러리 제이원에서 열린다. 전시작들의 제목은 '어이쿠! 봄 간다'. 봄이 갈 무렵 그려서 그렇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053)252-0614.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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