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만 원이라뇨? 이게 얼마짜린데, 더구나 애지중지하면서 얼마나 깨끗하게 사용했는데, 거의 새것인데요." "요즘은 찾는 사람이 없어서 저희도 가져가 봐야 짐입니다." '애물단지' 말 그대로 덩치만 커다란 컴퓨터다. 나는 우리 집의 애물단지 컴퓨터를 쓰다듬으면서 잠시 망설이다 결국 안 팔기로 했다. 그러자 헛걸음을 한 재활용센터 직원들이 툴툴거리며 돌아갔다. 집안에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컴퓨터는 확실히 문제였다. 내가 일부러 연락을 해서 온 재활용센터 직원들이라 웬만하면 넘기려고 했는데 너무 헐값이라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동생의 군 제대를 며칠 앞두고 있고 나보다 네살이나 어리지만 기특한 동생이 장만해 준 컴퓨터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예전엔 여느 중학생들이 다 그렇듯 나도 컴퓨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중학생이었다. 친구들 집에는 한두 대씩 번듯하게 놓여 있는 컴퓨터. 하지만 우리 집에는 흔해 빠진 낡은 컴퓨터마저 없었다. 그 시절 컴퓨터를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그토록 원하는 컴퓨터였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집에서 나름대로 독립을 하며 그나마 지금까지 컴퓨터를 간직해 온 것은 동생이 직접 컴퓨터를 사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직원들이 돌아가고 나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를 다하고 나서 거실에 그대로 놓여 있는 컴퓨터를 보고 청승맞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밤늦도록 나는 뒤척였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가난했던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6개월쯤 지났을까. 무슨 용기인지 나는 6개월치 월급을 가지고 덜컥 최신 컴퓨터를 사버렸다. 학창 시절부터 얼마나 갖고 싶었던 컴퓨터였던가. 그런데 그날 밤 컴퓨터를 보신 아버지는 무섭게 변하셨다. 가부장적이고 엄하셨던 아버지를 향해 나는 울면서 온몸으로 막아보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내 컴퓨터를 부숴버렸다.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돈을 쓴 것이 내 죄라면 죄였다. 산산이 부서진 컴퓨터의 조각들을 본 뒤로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 아버지와는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수년이 흐르고 동생의 때늦은 군 입대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커다란 컴퓨터가 자취방에 배달되어 왔다. 동생이 보내준 거였다. 그동안 형을 보면서 남몰래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그 순간 컴퓨터를 바라보는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며칠 뒤 동생은 군에 입대했다.
재활용센터 직원들이 다녀간 다음날, 나는 아침을 먹다 말고 컴퓨터에 쌓인 먼지들을 닦아냈다. 덩치만 커다란 컴퓨터, 편리한 점만 따진다면 훨씬 작으면서도 사양이 더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삶에 있어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소중한 것이다. 비록 물건일지라도 나는 동생의 사랑을 끌어안고 싶은 거였다. 지금은 아버지와 화해하고 아직은 어색할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는 그래도 나아진 집안 분위기에 나는 흐뭇하다. 한때나마 동생이 사다 준 컴퓨터를 돈 몇 푼에 팔려고 했던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나온다. 이제는 하나뿐인 동생이 2년 2개월의 짧지 않은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겠지만 함께 몇 십 년을 생활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선물을 한 적이 없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동생에게 제대로 된 컴퓨터를 사주고 싶다. 보통은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하는데 내 동생만큼 먼저 형을 생각하는 아우도 없는 것 같다. 내 마음과 정성을 담아 동생에게 꼭 제대 선물로 컴퓨터를 선물해주고 싶어 부족한 글이지만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류재필(대구 달서구 성당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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