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와 열정. 전혀 어색한 단어조합이 아니었다. 적어도 김봉남에겐. 아니 김봉남이라고 하면 혼난다. 앙드레 김 선생님. 그 열정이 20대 못잖다. 그해 달력에 쉬는 날이 많으면 싫어한다. 더 일하고 싶은데 못하기 때문.
요즘은 더 바빠졌다. 패션뿐 아니라 화장품, 아동복, 자전거, 속옷, 선글라스 등 '앙드레 김'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앙드레 김 브랜드가 전국에 휘날린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그에게 딱 들어맞았다.
그는 47년째 신문 마니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발간되는 조·석간 중앙 일간지를 47년간 훑어보면서 지내왔다. 지금도 변함없다. 17개에 이르는 일간지를 매일 2시간 남짓 읽어본다. 관심있는 분야는 기사내용까지, 관심이 덜 가는 정치·경제·사회면도 다 읽어보진 못해도 큰 헤드라인은 다 본다.
'결혼은 왜 안 했냐'고 물었다 혼났다. 혼낸 요지는 '외국 기자들은 사생활을 묻지 않는데 그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것. 뜨끔했다. '아 그래도 아직은 한국정서가'. 독백을 살짝 곁들이며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하자, 양자와 손자·손녀 얘기도 더 자세히 들려줬다. "혹시 바이섹슈얼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질문에도 내가 대답을 해야 하나요'라며 웃어넘겼다.
인터뷰 중 놀란 것은 세간에 화제가 됐던 옷로비 사건이 그에게는 삶의 큰 교훈이 됐을 뿐더러 사업이 번창하는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것. '옷롸비'(앙드레 김의 발음) 사건에서 밝혀진 건 제 본명 뿐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 사건을 통해 삶에 있어 진실함과 정직함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깨달았고 이후 옷 계약 건이 폭주하는 등 사업이 잘돼 지금은 앙드레 김 건물인 '아뜨리에'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다.
앙드레 김의 소중한 대구 손님이자 지인이기도 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김계남 대구지부장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27일 그의 사무실에서 1시간 남짓 기자의 눈으로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앙드레 김 건물은 '화이트 컬러'로 화려함 그 자체다. 의상실 벽면과 바닥이 모두 깔끔한 화이트 톤이고 의상실 곳곳엔 취미로 수집하고 있는 유럽 왕실에서나 볼 수 있는 석고상들과 각종 크리스털 소품들로 가득했다. 2~4층은 의상을 만들고 재단하고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고 차를 안 가져왔다고 하자 서울역까지 경호원이 운전하는 자신의 '벤츠 클래식 500' 차를 내주기도 했다.
◆어린시절 '의상에 꿈'
앙드레 김은 새 봉(鳳), 사내 남(男)을 써서 봉남이다. '봉남이네 어린 아이 감기걸렸네' 동요에 나오는 그 봉남과 이름이 같다. 한국전쟁을 겪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그는 시와 수필 등 문학을 좋아했고, 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었다. 특히 그는 의상에 관심이 많았다. 16세 때인 1951년 피난처인 부산에서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영화들을 보면서 세계의상의 유행이나 흐름을 보았고, 의상 디자이너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파리의 여인' 등에 나오는 여배우들의 의상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 됐고, 큰 영감을 얻게 했다. 10년이 지난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디자이너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1962년 대한민국 첫 남성 디자이너가 됐다. 미지의 길을 개척한 탓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많이 받았고, 1966년에는 파리에서 첫 패션쇼를 여는 한국인이 되기도 했다.
그가 추구하는 패션은 생활문화로서의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를 의상에 접목시키고 대중에게 더 다가서고자 노력한다. 유명 연예인이 그의 패션쇼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도 보다 손쉽게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한 것.
'Korean, Asian, Oriental' 그는 유럽이나 미국 디자이너들이 갖지 못한 독특한 장점을 갖고 있는 걸 자랑으로 여겼다. 본인 역시 누구를 본받기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 위상을 갖고 한국을 대표해 자랑스레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인 것이다.
◆'앙드레 김 브랜드' 확장
반세기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브랜드는 이름만 붙여도 품격이 높아지고 신뢰가 갈 정도로 곳곳에 파급되고 있다. 앙드레 김 도자기부터 속옷·양말·안경·냉장고·조명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앙드레 김 벽지'와 '앙드레 김 여행가방'이 출시되며, 건축분야에서도 타운하우스 '앙드레 김 빌리지'가 검토되고 있다.
그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지만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 세계와 맞다고 생각한 업체와만 손을 잡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며 "얼마 전 금융 대부업체나 담배 쪽에서도 제안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차별화된 감수성을 갖고 전 세계인에 한국적인 패션을 전파하는 종합예술인. 아직도 국내외를 넘나들며 매년 5~7차례 패션쇼를 펼치고 있다. 한국 · 태국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외교통상부와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이 주최하는 패션쇼도 열었다. 태국 왕실 후원으로 양국 간 문화교류와 친선을 도모하는 자리. '태국의 영광'을 테마로 한 세 번째 무대를 장식해 태국 왕실에 큰 자긍심을 줬다.
'억눌린 한(恨)의 문화가 아닌 밝은 미래, 전통치마 · 저고리 같은 소박함보다는 교양미 · 고품격 · 신비감', 이것이 바로 앙드레 김이 널리 알리고자 하는 한국적 아름다움이다.
◆일문일답
-가족 관계는.
"부모님이 벌써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이 세상 사람은 없어요. 대신 제가 양아들(김중도씨)이 있는데 제 아들보다 더 열성으로 키웠습니다. 벌써 결혼해서 손녀 둘, 손자 하나를 낳았어요. 너무 예쁘고 귀엽고 제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본인 성대모사에 대해.
"처음엔 조금 불쾌했어요. 희화화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후에 시민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밖에 나가면 사인·사진공세에 시달리게 되고 국민적 스타로 거듭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일종의 유명세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와 완전 똑같이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옷로비 사건 때문에 맘 고생이 심했습니까.
"아니에요. 그 사건을 통해 제 본명도 밝혀지고 더 큰 교훈을 얻었어요. '사람은 진실하고 정직하면 좋은 끝이 있다.' 아무리 억울해도, 오해를 살 만한 일이 있어도 진실한 맘으로 잘 견뎌내면 반드시 전화위복이 되고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옷로비를 겪고 제 사업은 눈부실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연예인을 무대에 세우는 특별한 이유는.
"전문 모델들은 세련된 멋이 있긴 하지만 감성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연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반면 연예인은 풍부한 표정 연기를 통해 무대 위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습니다. "
-모델로는 어떤 연예인을 좋아합니까.
"여자 연예인은 이영애, 김희선, 한채영, 김태희 등이 제 옷이 표현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을 잘 살려줬고, 송승헌, 장동건, 이병헌 등도 멋있는 남자 모델들입니다. 의상을 더 품격있게 만들어주는 모델들이지요. 스포츠 스타로는 이승엽, 이동국 선수 등이 제 패션쇼에 올랐습니다."
-'화이트'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제 의상실이 모두 화이트 톤이고 제 의상은 1년 365일 흰색이에요. 강아지 말티즈도 흰색, 차도 흰색입니다. 흰색은 너무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라 좋아요. 흰눈이 펄펄 내려 세상에 소복이 쌓이고 아이들이 좋아 펄쩍펄쩍 뛰노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아름다워요. 청아하고 깨끗한 걸 좋아해요."
-후계자가 있으신지.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후계자라면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하죠. 아뜨리에 경영인과 앙드레 김의 디자인 세계를 이어갈 수 있는 디자이너 양성이죠. 저보다 한 살 더 많은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아직까지 후계자 없이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앞으로 10년은 더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 후계자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옷 한벌 가격은.
"(앙드레 김이 아닌 여직원이 대신 답변) 보통 패션쇼에 올랐던 옷 1벌 가격은 500만~600만원 정도이고요. 더 비싼 것은 1천만원까지 해요. 이 옷들은 성악가, 유명 악기연주자 등 공연 예술가들이 주로 구입한답니다."
-향후 계획은.
"'앙드레 김'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를 찍고 싶어요. 저의 패션세계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앙드레 김은? 1935년 경기도 고양시 출생. 1962년 앙드레 김 의상실 설립 및 첫 의상발표회 개최. 1966년 파리·워싱턴 국제의상발표회. 1982년 이탈리아 대통령 문화공로 훈장.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패션쇼, 1996년 이집트 카이로 패션쇼, 199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앙드레김의 날'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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