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근서의 대중문화 일기] 꿈꾸는 자와 정치하는 자

1918년 러시아의 한 시골 학교는 혁명 1주년 기념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이 수많은 피켓과 휘장, 현수막을 만들고 엄청나게 커다란 걸개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이 마을의 축제는 공산당 간부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차르 권력을 무너뜨리고 노동자 권력을 수립한 그날을 마치 어린아이들의 놀이판처럼 꾸며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마을 축제에 등장한 피켓과 휘장 그리고 현수막과 걸개그림 어디에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볼셰비키 혁명을 이미지화한 그림들은 대개는 염소, 말, 소, 개, 고양이,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이었다. 당시 이 시골 학교의 교장은 '눈 내리는 마을'의 화가 마르크 샤갈이었다.

공산당 간부들에게 혁명은 정치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샤갈과 마을 사람들에게 혁명의 이미지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해방과 자유의 이미지, 지극히 문화적이고 축제적인 상황이었다. 샤갈과 마을 사람들은 혁명을 통해 더욱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숙청이나 보복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현실정치는 그들 안에서 어떤 의미도 얻을 수 없었다. 물론 낭만적이고 이상적이었다. 이 일로 샤갈은 교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믿었던 혁명으로부터 버림받고 배신당하는, 그야말로 뼈아픈 순간이었다. 그래도 레닌이 사망한 1924년까지, 혁명 러시아는 아방가르드 예술인들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관료적 정치 스타일은 문화와 예술을 질식시키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정치적 엘리트들과 민중의 소통은 늘 그랬던 것 같다. 이들의 차이는 이념과 가치의 차이를 초월하는 보편적 현상은 아니지만,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분명하고 빈번하다. 물론 예외는 있다. 어떠한 면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런 예외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민중들과 함께 꿈꾸는 자였고, 현실 정치의 이전투구 속에서도 그 꿈을 놓지 않았다.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토론을 즐겼고, 모든 정치인들이 해체의 대상으로 지목하면서도 정작 욕망의 도구로 이용하는 지역주의를 정말 해체하려 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바보였고, 아마추어였으며, 풋내기고 촌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꿈꾸는 사람이었고, 현실정치 속에서도 그 꿈을 잃지 않은 우리가 아는 거의 유일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아생전 그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룰 수 없는 꿈의 상징이었다. 그의 죽음은 커다란 상실이다. 우리는 우리 꿈의 상징을 잃어 버렸다. 이 슬픔은 단지 인간 노무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현실과 처지에 대한 회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장의 상주이자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일은, 꿈꾸는 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그 꿈을 현실 정치의 '우려'로 변질시키거나 훼손해선 안 된다. 덕수궁 앞 분향소와 시청 앞 광장을 놓고 벌어진 해프닝은 이미 현실 정치가 그 꿈을 불편해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 불편함은 현실 정치의 소통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귀가 막히면 기가 막힐 일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 그리고 그 기막힌 일들이란 꿈꾸는 자를 가위눌리게 만든다. 제발 편안히 꿈꿀 수 있게 내버려 두길 바란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분향소에도 다녀오지 못하고 부끄럽게 이 글을 쓰고 있다. 돌아간 그분의 평화를 기원한다. 아울러 우리들 꿈꾸는 자들에게도 평화가 깃들기 바란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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