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인터넷의 설계와 효과

필자는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의 인터넷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옥스퍼드의 큰 장점은 저명한 학자들의 강연이 수시로 개최된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참석한 반 덴 호번(J. van den Hoven)과 보우커(G. C. Bowker)의 강연은 여러 점에서 흥미로웠다. 호번은 철학과의 초청인 반면 보우커는 경영대학에서 주최한 행사의 강연을 맡았고, 두 교수의 학문적 배경은 응용윤리학과 기술혁신학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런데 한 달 간격으로 이루어진 강연에서 호번과 보우커는 공통적으로 '인터넷의 설계방식과 사회적 가치'를 논의하였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인터넷의 설계와 가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에 따라 인터넷의 사회적 효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검색엔진인 구글(Google)은 특정 웹사이트가 링크를 많이 받을수록 검색 결과에서 잘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는 링크를 인터넷 이용자의 투표 행위로 간주하는 구글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숨겨져 있다. 따라서 수많은 개인들과 기관들은 링크를 획득하기 위해 자신의 웹사이트의 콘텐츠와 서비스를 강화하고 네트워킹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것은 구글의 검색 결과에서 상위에 언급되기 위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인터넷 생태계 전체를 활성화시킨다.

선스타인(C. Sunstein)의 저서 넛지(Nudge)에는 인터넷 시민의식 점검 소프트웨어가 나온다. 우리들은 누구나 한 번쯤 무언가에 화가 잔뜩 나서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아무 이유 없이 인터넷에서 나도 모르는 상대방을 비방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댓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렇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 이것을 규제하려고 한다면 개인의 자유가 심각하게 구속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부적절한 인터넷 의사소통을 자동적으로 경고하는 교양 소프트웨어를 설계해서 확산하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공익도 지킬 수 있다.

이 외에도 자유를 존중하면서 공익을 도모하는 인터넷의 설계 방식은 많다.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이 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부적절한 설계가 가져올 결과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엇이 부적절한 설계인가. 월드와이드웹을 창안한 베르너스-리(T. Berners-Lee)에 따르면, 인터넷의 기본 가치는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라고 한다. 사이버 공간의 열린 접근을 제한하는 법제도와 문화는 특정 국가의 인터넷 고립화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의 디지털 경제 기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인터넷 경제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웹 2.0 서비스의 아이디어도 이용자의 참여와 정보의 개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버드대의 허딕트 웹(herdict.org) 프로젝트는 국가에 따라 접속이 제한되는 웹사이트들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생중계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의 인터넷 설계에는 어떤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가. 그리고 인터넷 자유를 고양하면서 동시에 공공 이익을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필자가 판단컨대 한국의 인터넷은 이용자의 다양한 접근 통로를 확대하기 위해서 설계되어야 한다. 학교, 기업, 관공서 등 거의 모든 웹사이트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브라우저를 통해서만 이용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어 있다. 아울러 정부가 시민들의 익명적 의사소통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익명성 때문에 포털 사이트의 역기능이 증가한다고 판단한다면, 정부는 웹사이트의 신뢰성을 평가하여 운영기업에 세금 혜택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인터넷 설계에 개입해야 한다. 결론을 대신해서 말하면, 미래 전문가인 레온하드(G. Leonhard)는 과거에 성공한 조직이 치밀한 관리와 통제로 부흥했지만, 앞으로는 통제를 효율적으로 줄이는 기업과 국가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박한우(영남대 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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