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부터 0~4세 영·유아를 둔 저소득 가정에 표준보육료가 차등 지원되는 등 정부의 보육료 지원이 큰 폭으로 확대된다. 정부가 보육비 지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책이다. 하지만 서민들은 '아이 갖기'에 여전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합계출산율(가임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 1.19명(2008년 기준)까지 떨어진 한국사회의 암담한 보육 현실을 짚어본다.
결혼할 당시 '셋만 낳아 잘 기르자'고 약속했던 한소영(가명·32·여·포항시 우현동)씨. 하지만 한씨는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피임을 하고 있다. "살림이 안정될 때까지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말자"고 남편과 의견을 모았다. 한씨는 "이제 세살인 딸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만 해도 한 달에 60만원이 넘는데 보육료 전액을 면제받아도 고작 20여만원에 불과하다"며 "아이가 커 갈수록 각종 사교육비 등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텐데 누가 그 돈을 받기 위해 아이를 더 낳겠느냐"고 코웃음을 쳤다.
◆고작 5만원? 안 낳고 말죠=정부의 지원 혜택에도 중산층·서민의 보육 부담은 만만찮다. 7월부터 시행되는 보육비 지원 대책에 따르면 각 가정은 많게는 38만원, 적게는 5만원가량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영·유아의 경우만 따져도 이 돈으로 자녀를 키우기에는 어림도 없다. 주부 황선숙(31·여·경산시 사월동)씨는 "어린이집 비용은 30만원이지만 여기에다 간식비와 각종 교재비 등 '웃돈'까지 더하면 5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며 "어지간한 월급쟁이 벌이로는 아이 둘을 감당하다 허리가 휘고 만다"고 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봤자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보육료 부담은 홑벌이 부부보다는 맞벌이 부부들에게 더 절실하지만 소득 기준에 가로막혀 지원받을 길이 없다.
맞벌이 부부인 김준원(38·달서구 죽전동)씨는 "내 월급만 따지면 250만원으로 보육료 지원 대상에 해당하지만 아내의 수입 152만원까지 합치면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여성에게 보육료 지원을 받고 전업주부를 하든지, 보육료를 감당하고 남는 월급을 주는 직장에서만 일을 하라는 말이냐"고 했다.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다=이숙영(40·여·달서구 성당동)씨는 "외제차 굴리고 40평형대 아파트에 사는 자영업자들까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전액 무료로 보내는 경우가 흔하다"며 "어린이집 가서 엄마들과 이야길 나누거나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편법을 동원해 정부 지원을 받는 갖가지 비법들이 나돌고 있다"고 푸념했다.
새로운 보육료 지원법 역시 벌써부터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 산정시 적용기준이 공시지가로 돼 있다 보니 거래시세와 공시지가의 차이가 큰 경우 아파트 소유자보다 전세 세입자의 재산이 더 많은 모순도 발생한다. 자동차 소득 책정은 일괄적으로 2천500cc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700만원짜리 중고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5천만원짜리 외제차를 가진 사람보다 더 부자가 되는 상황도 있다. 자영업자의 경우도 지금까지는 매출자료를 소득기준으로 잡았으나 앞으로는 국세청 '종합소득자료'를 기준으로 하게 돼 소득을 낮춰 신고하는 고소득 자영업자에게 기회를 준 꼴이 됐다.
정작 혜택이 돌아가야 할 곳에 제대로 지원되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예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서 바우처' 서비스. 월 소득액 374만원 이하 가구라면 정부에서 한 달에 2만원을 지원받아 1만5천원만 내면 일주일에 한번 가정교사의 방문을 받아 자녀 독서 교육을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워낙 지원자격이 폭넓게 규정돼 있어 엄마들의 신청 경쟁으로 예산이 동나기 일쑤다. 최시원(36·여)씨는 "한 달 300만원 이상 버는 가정이 2만원이 없어 자녀 교육을 못 시키겠느냐?"며 "생색내기식 사업으로 혈세만 축내기보다는 진정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법이 마련돼야 저출산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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