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겪은 인플레이션은 파멸적이었다. 시간대별로 물가가 오르면서 1923년 7월부터 11월 사이에만 물가가 370만 배 폭등했다. 돈 가치 폭락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주정뱅이가 쌓아둔 술병의 가치가 술값만큼 저축한 사람의 예금잔고보다 높았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케인스는 "인플레율이 높을 때는 택시를 타고 낮을 때는 버스를 타라"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택시는 내릴 때 돈을 내고 버스는 탈 때 돈을 내기 때문이다.
이때 생겨난 말이 超(초)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이다. 보통 물가상승이 통제를 벗어나 물가상승률이 수백 퍼센트에 이른 상황을 말한다. 필립 케이건(1956) 같은 이는 더 구체적으로 물가가 매달 50% 이상 상승하는 경우로 정의하기도 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초인플레이션을 맞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통화 남발이다. 독일제국이 1차대전 戰費(전비) 조달을 위한 재정지출 증가분의 86.3%를 불환지폐로 충당해 이미 돈이 넘쳐나 있었는데다 1천320억 마르크의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또다시 돈을 찍어냈다.
1980, 90년대 중남미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재연됐다. 80년대 중반 브라질과 볼리비아의 인플레율은 연간 1천%, 8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에서는 2만%를 넘었다. 하지만 이것도 짐바브웨에 비하면 약과다. 지난해 7월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2억3천100만%에 달했다. 이들 국가의 초인플레도 막대한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통화 발행 때문이었다.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투입하고 있는 엄청난 유동성이 곧 초인플레를 불러올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다. 미국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는 "미국의 초인플레 진입은 100%"라고까지 했다. 지난해 미국 증시의 약세를 전망하고 투자해 100%가 넘는 수익을 올린 '블랙스완' 헤지펀드가 최근 '인플레이션 펀드'를 만들어 원유, 철, 구리, 곡물 등 원자재에 투자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가 경기 부양에 목을 매고 있는 마당에 초인플레 주장이 엉뚱해 보이는 것 같지만 무시할 것도 아니다. 인플레의 원인은 통화 남발이지 않은가. 우리도 800조 원이 넘는 시중 유동성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만큼 인플레에 대비한 정책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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