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무릎의 문양」/ 김경주

저녁에 무릎, 하고

부르면 좋아진다

당신의 무릎, 나무의 무릎, 시간의 무릎,

무릎은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살을 맴도는 자리 같은 것이어서

저녁에 무릎을 내려놓으면

천근의 희미한 소용돌이가 몸을 돌고 돌아온다

누군가 내 무릎 위에 잠시 누워 있다가

해골이 된 한 마리 소를 끌어안고 잠든 적도 있다

누군가의 무릎 한쪽을 잊기 위해서도

나는 저녁의 모든 무릎을 향해 눈먼 뼈처럼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다

우리말 '무릎'의 '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용돌이가 보인다. 강골 사이 연골의 느낌과 비슷한 'ㄹ'과 'ㅍ' 사이의 소용돌이이다. 'ㄹ'과 'ㅍ'은 서로 비슷한 음가이면서도 서로 불통하려는 음가이므로 파문이 생겼을까. 때문에 '릎'은 자주 오타를 만든다. '膝'(슬)이라는 말 역시 상하가 서로 비슷한 구조이다. 그 말의 구조도 무릎의 역할과 닮았다. 「무릎의 문양」은 무릎에 대한 명상이다. 무릎의 의미가 몸을 지탱한다는 보편적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것은 무릎에 대한 질문과 대답의 묶음이기도 하다. 무릎은 문명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된다고 시인은 믿는다. 무릎의 문명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시간, 근친, 사랑 등이 무릎의 연골과 같이 떠오른다. 문명이므로 무릎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이기도 하다. 탄생과 성장과 소멸이 있으므로 무릎은 '가장 섬세한 파문'과 '가장 무서운 음절'을 그 소용돌이에 가지고 있다. 무릎이야말로 시인 자신의 근친이라는 언술에 이르면 무릎에 생긴 멍들은 스스로의 심리에 다름 아니다라는 자각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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