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복이 '휙'하며 거센 바람소리를 낸다. 기합소리가 '쩌렁쩌렁' 도장에 울려퍼진다. 1분여의 짧은 품새 동안 비범한 '내공'이 뿜어나온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의 최영자(58'여)씨. 나이로 보자면 자식들을 웬만큼 키우고 슬슬 노년을 즐기려고 할 때지만 그녀는 좀 남다르다. 딱히 정의하자면 '무도'에 빠진 '여장부'라고 할까.
"여성이기보다 무인으로 남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최씨는 자신이 무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태권도 공인 5단, 택견 6동(6단에 해당) 등 그녀의 경력도 화려하다. 더욱이 민족도장(대구 수성구 범어1동)에서 20년 가까이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다. "배우는 학생들이 '사범님, 스타킹(놀라운 재능을 가졌거나 특별한 사람들이 출연하는 SBS 오락 프로그램) 한번 나가보세요'라고 자주 이야기해요. 그만큼 아이들 눈에는 제가 무척 신기한가 봐요."
그녀는 35세 전까지 남들처럼 딸 둘, 아들 하나 키우는 데 정신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에게 남은 것은 살이 찐 몸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 초기 52㎏였던 몸무게가 75㎏까지 불어나 웬만큼 예쁜 옷은 손도 못 댔고 허리 쪽에도 무리가 생겨 통증으로 한동안 고생한 것. "6세 막내 아들이 너무 여성스러워 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태권도 도장을 찾았죠. 거기서 지금의 김호진 관장님을 만났어요. 관장님은 태권도를 하면 허리통이 나아질 거라고 확신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들과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죠."
처음 일주일 동안은 수련생들이 모두 어린이들이라 서먹하고 재미도 없어 그냥 건성으로 다녔다. 그러다 "그렇게 배우려면 당장 옷을 벗어라"는 관장의 불호령에 자극을 받았다. 평소 집념이 강했던 최씨는 그때부터 정신을 차려 '죽자사자' 태권도에 매달렸다. 하루 도장을 두 차례나 찾는 일도 있었다. 식이요법은 물론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당시 중구 삼덕동에서 수성못까지 걷기도 병행했다. "효과 만점이었어요. 허리통이 몰라보게 완화되고 몸무게도 계속 줄어 1년 만에 15㎏ 정도 빠졌어요. 언제부턴가 태권도가 삶의 활력소가 됐죠."
1단을 딴 뒤 관장의 권유로 지도자 길도 시작했다. 주위에선 1단만 따면 그만두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이미 그녀는 태권도의 매력에 푹 빠진 상태였다. "주부로 태권도 사범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죠. 그렇다 보니 남편이나 지인들이 걱정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안일하게 집에 있는 것보다 무도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다녔죠."
지금은 모두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50대 후반인데도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한데다 아무나 선택할 수 없는 태권도 사범으로 생활하는 것이 더없이 보기 좋다는 것. 아직까지 골다공증이 없는데다 병원에서 30, 40대 신체를 가졌다고 칭찬까지 들었다.
그녀는 사범 생활을 하면서 태권도와 수박도'경호무술'택견 등 4개의 단증을 땄다. 특히 1991년부터 배운 택견으로 14년째 대구노인종합복지회관에서 무료 지도하고 있다. "처음 지도할 당시만 해도 대구에 택견 프로그램을 하는 곳이 별로 없었죠. 그렇다 보니 한창 때는 선착순으로 모집해야 할 만큼 인기가 많았어요. 어르신 중엔 1기 때부터 지금까지 택견을 줄곧 수강하는 분도 계시죠." 최근에는 요가 지도자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최씨는 사범 생활을 통해 그 전에 몰랐던 삶의 보람을 항상 느낀다고 했다. "길거리를 가다 아이들이 '사범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때나 학부모들에게 인생 선배로 카운슬링할 때 뿌듯함을 갖게 돼요. 다른 남자 사범과 달리 같은 여성 입장에서 편안하니까 언니처럼 대하는 학부모들도 적잖죠."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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