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사 정현주의 휴먼 토크]그대를 사랑합니다

요즈음 남편이 '아버지 학교'라는 특이한 교육과정으로 만학의 열기를 불태우고 있다. '아버지 학교'는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데 우리네 아버지들을 전인격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신개조(?)시스템으로 종교인이 아니어도 입학 가능한 포괄적인 교육과정이다. 표현이 서툴고 화법이 어눌한 우리네 경상도 아빠, 남편들이 곤욕을 치르는 모양이다. 남편은 경상도 남자들의 평균보다는 양호한 감성을 가졌는데도 " 휴! 전공의 수련 과정보다 더 어렵네!" 라며 난처해 한다. 첫날 수업을 한 후 심야에 들어와 문 열어주는 나를 별안간 포옹하기에 화들짝 놀랐는데 숙제하는 중이란다. 아이들을 순서대로 찾더니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라고 크게 고함지르더니 또 껴안았다. 안긴 첫째 아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빠 술드셨어요?"라고 진지하게 묻는다. 한주 한주 지나면서 아내, 자녀를 향한 사랑의 표현법이나 그들의 의미를 새겨보고 그들의 장점을 확인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숙제는 '아내와 자녀들이 사랑스런 이유 20가지'를 적는 것인데 이 과제물에 네잎클로버를 장식하고 정성스럽게 코팅한 채로 겸연쩍게 내민다. '자녀가 사랑스런 이유 20가지'를 적은 내용을 보더니 녀석들이 감격하여 아빠 휴대폰으로 "아빠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에 하트모양 이모티콘을 어지럽게 장식한 문자를 중복하여 보내고 있었다. '아내가 사랑스러운 이유 20가지'의 내용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내가 몰랐던 나의 부분들을, 혹은 하찮게 여겼던 나의 성품을 남편이 사랑스러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자 위대한 격려였다. 그런데 20이라고 인쇄된 칸을 다 메우고 난 후 여백에는 21이라는 숫자와 함께 …으로 축약되어 있었다. 사랑스런 이유가 스무 가지가 넘어서 나머지는 …으로 표시했단다. 이 말은 내게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가슴 떨리고 황홀한 고백으로 다가왔다. 제눈에 안경을 가진 팔불출 남편의 검증되지 않은 판단이지만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다는데 왜 내가 세상이 즐겁고 신나지 않겠는가?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의 사장이 된 또 다른 팔불출 남편이 생각난다. 그 남편은 매일 언덕 길을 힘겹게 자전거 타고 올라오는 아내를 보면서 안타까워 했다. 어떻게 하면 아내가 편안히 고개를 넘어올까 고민하다가 아내의 자전거에 모터를 달아 주었다.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언덕에서도 잘 달리는 모터 자전거를 완성하였으며 이 자전거가 '대박'나서 혼다의 사장이 되었다고 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의 고통을 나누고 싶은 그 팔불출 남편의 마음이 부와 명예의 축복으로 승화하고 부부간 사랑도 결실을 이룬 것이다.

나도 남편에게는 어색해서 못다한 사랑 고백을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 사랑'으로 대신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