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물

물은 죽음을 상징한다. 이뿐만 아니라 삶을 상징한다. 이때의 삶은 죽음을 초월한 새로운 삶이다. 삶의 더러움과 질곡을 씻어내고 깨끗해짐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무조신화 바리데기에서 바리데기는 서천서역으로 가서 생명수를 얻어와 죽을병에 걸린 아버지 오구대왕을 살리고 자신은 신의 경지에 이른다. 길가메시 역시 물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생명의 풀을 얻는다.

물은 우주의 원초적 물질이며 삼라만상 생성의 바탕이다. 모든 풀과 나무와 곡식과 과실을 자라게 한다. 나아가 물은 여성의 생명 원리, 생식력을 상징한다. '산해경'에는 여자들만 사는 나라가 있는데 여자들이 어떤 샘에 들어가면 수태한다고 했다. 동명성왕의 어머니 유화, 혁거세왕의 왕비 알영은 모두 샘에서 탄생했다.

이 같은 물에 대한 생각은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열달 동안 모태의 물속에 산다. 그래서 그런지 물 없이는 며칠을 버티지 못한다. 그러므로 물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동양적인 사람 분류법에 따르면 물의 성질을 가진 사람도 있다. 쇠의 성질, 나무의 성질, 흙의 성질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물의 사람은 물을 만나고 물을 다스려야 성공한다는 것이 동양인들의 생각이다. 물을 잘 다스려 출세한 사람으로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 있다. 그는 물의 근원을 찾아 근원부터 하류까지 막힌 곳을 깊이 파서 잘 흐르게 하였다. 물의 성질에 순응하여 다스린 것이다. 물을 다스림으로써 땅도 평정하게 되었고 마침내 하늘의 뜻을 이룬다. 이에 앞서 우임금의 아버지 곤(鯤)은 9년 동안 비바람을 무릅쓰고 치수에 힘썼지만 실패했다. 요임금의 가르침인 '물을 공경히 다스리라'라는 말을 어기고 둑을 만드는 등 토목 공사로 홍수를 막으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를 거역한 것이다.

물의 본성은 흐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넓고 맑고 깊게 해 나가야 한다. 웬만한 불에는 마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만물을 생육시키고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고 우리의 더러움을 씻을 수 있다. 우리의 물은 무엇보다 모든 것을 어우르는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낮추면서 모든 것, 그것이 비록 더러운 것이라도 껴안아야 한다.

"물의 크고 작음을 보는 데는 반드시 그 물결을 보아야 한다. 해와 달이 밝은 빛을 지니고 있음은 작은 틈에까지 반드시 비친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라는 맹자의 말을 깊이 새길 일이다. 이런 뜻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말 것이다.

추연창 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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