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기혼자 20명에게 물어봤다. "정부에서 아이 한 명당 1억원을 지원한다면 자녀 한 명을 더 낳겠습니까?" 단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생각 없다"고 답했다. '예'라고 대답한 2명도 기존의 자녀 계획에 따른 예정된 출산일 뿐, 정부의 지원 때문에 자녀를 더 갖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자녀 한 명당 1억원을 지원한데도…
'1억원'은 한 달에 50~60만원씩 쓴다면 15년간 사용할 수 있는 액수다.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 상당 부분을 감당할 수 있게끔 1억원이 지급된다는 상황을 가정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젊은 부부들은 "'파격적인' 지원책이 나온다고 해도 한 명 더 낳을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25일부터 서울 강남구가 둘째 자녀 출산시 100만원, 셋째 500만원, 넷째 1천만원, 다섯째 2천만원, 여섯째는 3천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자녀 7명을 낳으면 출산장려금만 약 1억원을 받도록 하겠다는 안을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코웃음을 쳤다.
1억원도 마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교육비 때문이다. 최창호(36·수성구 수성동)씨는 "자식을 최고로 키우고 싶지 대충 뒷바라지할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요즘 평범한 가정도 사교육비가 엄청나다. 초교생 자녀 한 명이 있을 경우 학원비만 수십만원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국영수 과외에 피아노레슨까지 하면 자녀 사교육비가 100여만원씩 드는 마당에 자식을 더 낳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연화(35·여·남구 대명동)씨 역시 "입히고 먹이기만 한다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아니다"며 "자녀 한 명당 투자 금액도 엄청나지만 육아기간 동안 겪는 각종 고충까지 감안한다면 10억원을 준다고 해도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식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비해 치러야 할 비용과 고통이 엄청나다는 의견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사회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자식을 더 낳자는 것은 헛구호에 불과하다'고 했다. 삶 자체가 스트레스인 한국사회의 특수한 풍토 때문에 프랑스처럼 "낳기만 하면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겠다"는 정책이 등장하더라도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임동우(38·북구 침산동)씨는 "자식은 많을수록 복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딸 하나 있는 것도 키우기 겁나는 세상"이라며 "자녀에 대한 젊은층의 생각을 바꾸려면 사회적인 변화 없이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힘의 근원이라는 인식부터…
'비용 문제는 핑계일 뿐, 사실은 가족에 대한 가치가 약화하다 보니 자녀에 대한 애착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모(62·달서구 장기동)씨는 "우리 며느리도 돈 없어 둘째 못 낳는다는 핑계를 대지만 옛날에는 지금보다 없이 살아도 아이들만 잘 낳고 살았다"며 "자신만 생각하는 젊은 부부들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서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자영업으로 한 달에 300만원 남짓한 벌이로 세 아이를 키우는 이모(43·북구 산격동)씨는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못 낳겠다는 것도 그릇된 가치관을 가진 부모들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사교육 안 시켜도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며 "서로 보듬어가며 살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인데 이런 행복을 돈에 발목 잡혀 포기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한자녀더낳기운동연합 문차숙 대구본부장 역시 한 자녀 더 낳기를 위해 중점 홍보하는 부분은 가정의 중요성을 알리는 홍보캠페인이라고 했다. 문 본부장은 "저출산의 이유가 비용 때문이라면 고소득층일수록 자녀의 수가 많아야 하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자식 낳아서 뭐 하느냐, 자식에게 올인 하지 않겠다, 내 인생을 포기하면서 자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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