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생각만 해도 묘한 흥분에 휩싸이게 하는 이름이다.
'헤이 주드' '예스터데이' '이메진'…. 주옥같은 노래와 함께 시대가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베트남전, 반전 시위, 경찰봉, 총성 등 니코틴 함량 극대치의 거친 이미지들이 기타 음에 묻어난다. 푸른 청바지와 재킷을 입고 짙은 갈색 선글라스에 팔짱을 끼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던 존 레논. 과연 그가 꿈꾸던 것은 무엇일까. 두 번째 부인 오노 요코와 함께 이른바 '침대 평화 시위'를 벌이며 '평화의 기회'(Give Peace a Chance)를 갈구하던 그의 소망은 이뤄졌을까.
올해 3월 영국 리버풀 호프 대학 석사과정에 '비틀즈학과'가 신설됐다. 리버풀 출신의 청년 4명이 모여 만든 록 밴드가 연구의 텍스트를 넘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공식 해산된 지 40년 만의 일이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알게 된 지도 30년이 넘었다. 팍팍한 시대인 1970년대다. 흑백 TV에서 새마을 노래가 왕왕거릴 때다. 처음에는 이 단순한 곡이 뭐 그리 대수냐는 시선으로 보았다. '예전엔 나의 모든 시름들이 멀리 사라져 버린 듯했는데, 이제 그 시름들이 내 곁에 다시 밀려오는 것 같아요. 오, 그때가 좋았었는데. 오, 갑자기 지난날의 추억들이 밀려와요. 왜 그녀가 떠나야 했는지 난 몰라요.'
참 단순한 이야기다. 격동과 상실의 시대에 바치는 연서(戀書)와 같은 말랑말랑한 이야기다. 그런데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하더라도 연애편지만큼 절절한 것이 있을까. '폭력은 물러가라'는 혁명의 외침보다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한마디가 더 간절한 것 아닌가.
비틀즈의 명곡 33곡으로 만든 뮤지컬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년)가 그린 것도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진 비틀즈의 마력에 대한 향수다.
베트남전이 한창인 1960년대 후반. 영국 리버풀의 선착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청년 주드(짐 스터게스)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다. 낯선 그곳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준 것은 맥스(조 앤더슨)라는 친구. 주드는 맥스와 함께 화가의 꿈을 키우며 같은 건물의 뮤지션들과 어울린다.
주드는 맥스의 여동생 루시(에반 레이첼 우드)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 와중에 맥스는 베트남전에 징병되고, 루시가 반전 시위에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드와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게 된다. 여기서 주드는 '헤이 주드'의 주드, 루시는 '루시 인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의 루시다.
스토리를 만들고 음악을 집어넣는 다른 뮤지컬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음악이 스토리를 만든다. 선착장에서 '걸(Girl)'을 부르면서 시작해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로 끝을 맺고,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로 엔드 크레딧을 처리했다. 여류감독 줄리 테이머는 60,70년대 기록 영상과 화려한 시각효과로 비틀즈와 비틀즈의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특히 빨간 딸기의 이미지는 인상적이다. 루시가 떠나고 주드는 그림에 몰두한다. 하얀 캔버스에 빨간 딸기를 바늘로 꽂는다. 빨간 딸기즙이 피처럼 하얀 캔버스에 흘러내린다. 곧이어 딸기는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포탄으로 변해 붉은 화염이 되고, 딸기는 수류탄이 되어 주드의 손아귀에서 터진다. 대단한 시각 효과다. 먹음직스런 딸기가 이렇게 폭압적인 이미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그래도 비틀즈의 음악이다. 비틀즈의 원곡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모든 곡을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의 라이브 음성으로 녹음을 해 배우들의 감정, 배경과 잘 맞아떨어진다. 탱크가 휩쓸고 간 마을에 숨은 흑인 소년이 부르던 '렛 잇 비'(Let it be)가 가스펠 합창단으로 이어지는 순간은 장엄하기 그지없고, 뉴욕의 뒷골목에 남은 주드가 지하철에서 부르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루시를 잃고 리버풀로 돌아간 주드가 부르는 '헤이 주드' 등은 스산함과 애절함, 젊음의 역동이 살아 꿈틀댄다. 환상적인 수중 장면 등 영화라는 장르에 맞게 꾸민 화면 효과는 새로운 감각의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반전 무드로 인해 경찰들은 아티스트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것도 막는다. 경찰의 눈을 피해 건물 옥상에서 열리는 '번개 공연'.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경찰들이 들이닥쳐 모두 연행한다.
혼자 남은 주드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그의 노래는 거리의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익숙한 목소리에 루시도 달려온다. 경찰들의 제지로 옥상에 올라갈 수 없는 루시는 옆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주드와 감격적인 재회를 한다. 이때 주드가 부른 곡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All you need is love)이다.
'만들 수 없는 걸 당신이 어떻게 만들겠어요. 구할 수 없는 걸 당신이 어떻게 구하겠어요. 당신이 필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그건 어렵지 않아요~.'
존 레논은 '부를 수 없는 노래는 당신도 어쩔 수 없어요' 라고 했다. 체념일까. 그래도 부를 수 없는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그가 주목한 것은 노래가 아니라 노래를 부르지 못해 무기력하고, 상실감에 빠진 이들의 아픈 마음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주술사 같은 노래다.
비틀즈가 우주를 넘어 불멸의 아이콘이 된 것도 이런 아픔을 달래는 치유 효과 때문일 것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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