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영애의 고전음악의 향기]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곡'과 '바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와 여름이 아침 출근길 옷을 맞춰 입기 어려울 정도로 계절감각을 잊게 만든다. 특히 대구 지역은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무더웠던 5월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날 저녁 일기예보에서는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예고하는데,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빰에 와 닿는다.

클래식 음악에도 감상자의 기분을 조금 더 여름에 가깝게 해주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듣는 순간 싸늘한 겨울을 연상시키거나, 괜스레 우울하고 쓸쓸하게 만드는 음악도 있다. 물론 감상자의 상태나 기분에 따라서 같은 음악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누구의 무슨 음악'하면 '아! 여름이다'라는 식으로 열정이나 뜨거운 뭔가가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있다.

나는 여름하면 먼저 드뷔시가 떠오른다. 19세기 후반 회화를 중심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일기 시작한 '인상주의'의 열풍을 음악으로 옮겨온 작곡가 드뷔시는 여름과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다. 피아노 모음곡 '베르가마스크' '영상' 1-2를 비롯해 많은 피아노곡들의 제목에서 물이나 바람과 같은 자연을 통해 여름을 표현해 놓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드뷔시의 음악들 중에서 가장 여름을 연상시키는 음악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과 '바다'일 것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를 감상하기 앞서 들으라는 의미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일종의 교향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라르메의 시는 사실 매우 관능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감정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반면, 드뷔시의 음악은 그야말로 '인상주의'라는 스타일답게 은근하면서도 열정이 꿈틀거리는 듯한 묘한 음향적 결합을 이루고 있다. 한여름날의 나른함, 그리고 뜨거움이 혼합된 여름의 음악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드뷔시 자신이 '3개의 교향적 스케치'라고 이름 붙인 '바다'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에 비하면 조금 더 직접적인 인상주의 회화풍의 관현악 음악처럼 느껴진다. '바다'를 듣고 있으면 마치 지금 내 눈앞에 거대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감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물론 드뷔시가 보고 음악으로 옮겨놓은 바다는 대서양에 더 가까울 테지만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고 나처럼 어린 시절을 바닷가(부산)에서 자랐던 사람에게 드뷔시의 '바다'는 특별히 고향(?) 혹은 향수와 애틋함을 함께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제 여름이다. 클래식 콘서트는 여름동안 야외로 나가거나 잠시 휴식에 접어든다. 하지만 음반을 통한 감상으로 그 긴 공백을 메울 수 있기 때문에 다음 가을 시즌을 우리는 참고 기다릴 수 있다. 무척 무더울 거라는 올 여름에 새삼스럽지만 시원하거나 열정적인 클래식 음악과 함께 여름을 지내보면 어떨까.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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