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용락의 시사코멘트] 이명박 정부의 정국 해법은?

지난 며칠간 일본 동경경제대 서경식 교수가 쓴 '청춘의 死神(사신)'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2002년 처음 발간됐다. 알다시피 지은이 서경식 교수의 두 형(서준식'서승)은 박정희 정권 때 조작된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각각 17년과 19년씩 한국에서 감옥살이를 한 사람들이다.

이 책은 1, 2차 세계대전과 문명의 발달로 야기된 죽음과 야만이 드리워진 20세기 초반의 그림 서른한 점에 대해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에세이를 붙여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에서 소외될 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데도 그것을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 내용 가운데 독일 화가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1903년)라는 그림이 있다. 전쟁'기아'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와 비탄에 빠진 어머니라는 부제가 붙은 그의 많은 그림처럼, 이 그림에서 죽은 아이는 1914년 8월 지원병으로 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죽은 페터라는 17세 지원병이 모델이다. 죽은 아이를 안고 마치 짐승처럼 웅크려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강렬한 충격을 준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많은 국민들의 애도 행렬을 주목해 본다. 현실 정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과는 후일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적어도 그가 온몸으로 지키려고 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애정은 우리 사회가 오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문재인 변호사도 한 인터뷰에서 재임 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쏟아진 싸늘했던 국민 여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렇게 극적으로 반전된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국민들의 이 같은 반응에는 현 이명박 정부의 책임도 한몫을 했다.

당초 이명박 후보에게 국민들이 표를 몰아 줄 때는 경제를 살리고 실용적 중도 정부를 구상하라는 주문이었는데 그간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도 살리지 못하고 민주주의마저 후퇴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결과론적으로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초래했던 검찰 수사가 이명박 대통령 친구 천신일 씨 수사에 대해서는 영장이 기각되는 현실, 게다가 친이'친박으로 갈라져 싸우는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은 선진적인 정치발전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수렁에 빠진 현 정국을 타개하는 해답은 무엇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작금의 이런 복합적인 사태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대통령에게 바른 말을 하지 않고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측근들을 문책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 후의 수습책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느냐에 따라 전화위복이 되기도 하고 끝끝내 파국에 이르기도 한다. 한나라당 내 쇄신특위는 지도부의 사퇴와 조각 수준의 개각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고, 대구 출신 초선인 조문환 의원(비례)을 비롯한 7명의 소장파 의원들은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물론 이상득 의원도 무엇이 대통령인 아우의 성공적인 국정수행과 국리민복을 진실로 위하는 길인지 깊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 의원 스스로도 2선 후퇴를 언급하기도 했다. 6선의 경륜 있는 원로 정치인이 지역 사회와 국가의 내일을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

서울대와 중앙대를 비롯해 전국 각 대학 교수들의 시국 성명 발표에 이어 각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의 시국성명이 잇따를 예정이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권과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는 훼손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역사에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적어도 전임 정권의 실패를 반복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시인.경북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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