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세상을 위해 사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래서 한때는 나를 사랑하며 살았다. 그도 아니었다. 요즘 다시 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도 아닌 것 같다. 사랑은 갈가리 나눌 성질이 애초부터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이 이리 어려운가.
시도 마찬가지다. 시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군가 물어오면 나는 인생이라고 대답한다. 시는 창작자의 삶과 결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한 치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삶 아니겠는가. 시시때때 다가오는 삶의 문제와 그 해결의 점이지대에서 사투를 벌이며 나아가는 밤바다 같은 인생. 그것을 꼭 빼다박은 시. 난해한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그것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시를 어떻게 명토 박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생, 어렵다. 시는 더 어렵다. 시는 삶의 결정체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시가 울림을 지니면 울림을 지닌 삶을 산다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윤동주는 그의 시에서 진술한 바 있다. 아닌 삶을 윤색한다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늘 새롭게 다가오듯 시도 늘 그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수학공식 같은 것이 있어서 집어넣을 수도, 틀이 있어서 찍어낼 수도 없는 것이다. 몇십 년을 써도 시가 어려운 이유다. 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우선이며, 내용을 담은 그릇은 그 변화를 고스란히 수용하는 유기체일 따름이다.
시에 앞서 우선 삶의 가짐을 단정하게 여며야 한다. 잘 안 되는 것들을 눈여겨보고 수정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이마빼기에 붙여 놓고라도 실천해야 한다. 좌우명은 그런 것이다. 잘 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들은 그다지 새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시가 되지 않는다. 깨쳐가며 사는 인생의 족적처럼 시가 남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 오죽 안 되었으면 이런 말을 앞세웠을까. 휴대폰을 열면 바탕화면에 한 자 한 자 나타나게 편집해 두었다. 생활 속에서 늘 그래보자고. 작은 데부터 실천해 보자고 나를 다그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바쁜 사람을 위한답시고 화장실에 갈 때는 가장 안쪽에 있는 변기를 쓴다거나, 뒷사람을 위한답시고 분향을 할 때도 가장자리에 향을 꽂는 것 말이다. 이조차 어렵다.
언제쯤이면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자연스럽게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사랑한다고 했던가. 익히 모르는 바 아닌 말이었지만 새삼스럽다. 휴대폰에 새긴 반쪽짜리 좌우명을 지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세상을 깊게 사랑한 사람들이 숱하게 역사 속에서 명멸해갔지만 아직도 세상은 지리멸렬하다. 여전히 그런 사람들을 요구하는 역사의 반복 앞에 아연하기만 하다. 한통속인 나에게 소름이 돋는 요즘이다.
안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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