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16돌 대구 제일교회 '조용한 변화'

故이상근목사 추모행사·유지 받들기·아동센터 등 '옛 명성 되찾기'

올해 창립 116주년을 맞은 대구 제일교회(담임 고용수 목사)는 최근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대구 제일교회에서 34년간 담임목사로 봉직, 은퇴한 고(故) 정류(靜流) 이상근 목사의 10주기 추모식을 연 것. 수년간 내부 갈등에서 회복 중인 제일교회는 이상근 목사의 유지를 받들어 조용히 변화하고 있다.

▶대구 교계의 '큰 어른', 故 이상근 목사

"이상근 목사님은 우리나라 개신교계의 '큰 어른'이셨어요. 신학자로서 목회자로서 후세에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대구제일교회 고용수(67) 담임목사는 "소탈한 인품의 소유자였다"며 이 목사를 회상했다.

1999년 80세로 타계한 이상근 목사는 대구 출생으로 대구 교계의 정신적 지주였다.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대구대봉교회 담임목사, 영남신학교 교장, 대구제일교회 담임·원로목사를 지냈다. 1944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 뉴욕 신학교, 프린스턴 신학교 등 유학을 통해 정통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그가 1960년부터 27년에 걸쳐 펴낸 12권의 신약성서 주해와 15권의 구약성서 주해는 한국 신학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서 주해서가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대구제일교회에서 33년을 지낸 김일주 행정실장은 "목사님 집 치고 이 책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행렬에도 아랑곳없이 홀로 교회 벽돌을 쌓고 있었다는 이상근 목사의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이 목사는 1991년 제일교회 담임목사를 은퇴하면서 전 재산을 교회에 헌납, 은퇴 교역자들을 위한 대구 기독교 원로원(경산)을 설립하기도 했다. 생의 마지막에서도 자신의 안구를 시각 장애인을 위해 기증하는 사랑의 삶을 실천했다.

▶대구 제일교회, 이렇게 바뀌고 있다

영남 지역 모교회로 일컬어지던 대구제일교회는 최근 수년간 담임목사와 성도간 갈등으로 신도가 대거 빠져나가는 아픔을 겪었다. 장신대 총장을 지낸 고 목사는 "총회에서 소방수로 나를 보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2007년 고 목사 부임후 제일교회는 빠르게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교회 학교 학생을 포함한 신도 수도 2천500여명에 달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대구제일교회는 올해부터 교회학교 초등부 연합예배를 도입했다. 연합반에는 저학년, 고학년이 함께 모인다. 폭넓은 교제와 활동성이 연합반의 장점. 교회 학교 여름 수련회도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를 통합해 실시한다. 교회내 영어학교와 문화교실 프로그램도 운용하고 있다.

대구제일교회의 널찍한 교회 주차장에는 차가 없다. 대신 농구대, 어린이 점프대, 실내 탁구장 등 놀이기구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부모들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 함께 온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다. 교회 담장을 허물어 평일에는 인근 동산병원과 신명고가 교회 주차장을 활용하고, 주말엔 교회가 병원, 학교 주차장을 이용하는 융통성도 발휘하고 있다. 고용수 담임목사는 "제일교회 100주년 기념관내 지역아동센터를 설치, 23명의 어린이를 돌보고 있다"며 "대구제일교회가 옛 명성을 되찾도록 힘쏟겠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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