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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동 계명대 일대 "유흥 떠난 곳에 예술이 왔다"

▲ 대구시 남구 대명동 옛 계명대 캠퍼스 일대에 화가들이 몰려들어
▲ 대구시 남구 대명동 옛 계명대 캠퍼스 일대에 화가들이 몰려들어 '대구의 몽마르트'가 되고 있다. 강민영씨의 작업실에 다른 화가들이 찾아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계명대가 자리잡고 있던 대구시 남구 대명동 일대에 화가들이 몰려들어 '대구의 몽마르트'가 되고 있다. 한 때 중구 동성로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던 화려한 곳. 게다가 후문 일대 '양지로'는 1990년대 후반까지 대구지역 퇴폐의 온상이라고 할 만큼 유흥업소들이 난립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속칭 '19번 도로'라고 불리던 일대 유흥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와 함께 계명대 캠퍼스 이전으로 인근 점포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미술대학만 남아있는 대명동 캠퍼스 일대는 경기침체 속에 빈 점포만 남아있었지만 몇 해 전부터 화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예비 작가를 꿈꾸며 타지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머무는 곳까지 합치면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화가가 머물 정도이며, 20여명의 전업 작가들이 이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미 예전부터 후문 쪽은 비교적 임대료가 싸서 작가들이 많이 살거나 작업실로 사용했지만 최근엔 정문 앞쪽까지 진출한 상태다. 이 곳 작가들은 농담삼아 정문 쪽을 '강북', 후문 쪽을 '강남'이라고 부른다. 서울과 달리 이 곳에서는 '강북'의 임대료가 더 비싼 편이다. 건물주들도 작가들의 입주를 환영하고 있다. 조용한데다 작가라는 이미지도 좋다보니 작업실 매물은 늘 있는 셈.

보증금 500만~1천만원에 월 임대료 20만~30만원 정도. 아직 신진 작가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비용일 수도 있지만 졸업을 앞둔 새내기 작가들의 입주 문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에 작업실을 둔 강민영씨는 "20, 30대 비슷한 또래의 작가들이 많다보니 서로 만나서 작품 이야기도 나누고, 외로움도 달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강씨와 함께 계명대 졸업생들로 구성된 작가 모임인 '신기루'의 회원 12명 중에 절반 가량이 대명동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 사람만 수십여명이 이 곳에서 활동 중이다. 김병수, 예진우씨를 비롯해 안정환, 박성열, 김성진, 김민욱, 김철윤, 도진욱, 김세원, 이충희, 신광호, 여은진, 박찬필, 이승현씨 등이 있다. 이들 중에는 수차례 전시회를 통해 예비 스타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적잖다. 안정환씨는 "친구, 후배들과 함께 가까이서 작업을 하다보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많다"며 "워낙 개성있는 작품을 그리는 친구들이라서 배울 점도 많다"고 했다. 이충희씨는 "주로 조용한 새벽에 그림을 그릴 때가 많은데, 힘들 때면 선배 작업실을 찾아가서 야식도 함께 먹으면서 새삼 용기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계명대 미술대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경기도 양주시 장흥아틀리에 입주 작가로 있는 이원희 교수의 작업실도 이 곳에 있다. 이 교수는 "2007년 이곳을 '아트밸리'(Art Valley)로 선포하고,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거리로 만들 계획이었다"며 "미술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일본의 도쿄(東京) 디자이너블록, 중국 베이징(北京) 따산즈(大山子) 예술특구와 같은 곳으로 육성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대구시와 관련 기관의 정책적 지원이 아직 전무한 상태여서 아쉬움을 더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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