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광장을 열고 광장으로 나오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을 전후하여 국민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많은 장면들이 펼쳐졌다. 그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법사학자에게는 단연 '법치'에 갇힌 광장의 모습이다. 물샐 틈 없이 촘촘히 이어 붙인 경찰 버스가 에워싸고 있는, 시민이 없는 서울시청 앞 광장의 사진이다. 지난해 촛불 집회 때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을 가로막았던, 용접하여 이어 쌓은 복층 컨테이너 박스의 사진과 함께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이다.

서울광장은 2004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분수대를 허물고 만든 것이다. 초기에는 그 발상의 전환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래서 '치적'으로 내세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신청하는 단체의 성격에 따라 사용을 허가해주기도 하고 해주지 않기도 하여 논란이 되더니, 이번에는 아예 정부가 나서서 무려 11일간이나 광장을 봉쇄해 버렸다.

경찰이 내세운 '법적 근거'는, "대간첩작전 수행 또는 소요 사태의 진압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대간첩작전 지역 또는 경찰관서'무기고 등 국가 중요시설에 대한 접근 또는 통행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라는 것과 "범죄 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리한 법 해석이다. '대간첩작전'도, '소요 사태'도 없었다. '목전'의 범죄 행위로 '중대한 손해'를 끼치게 될 '긴급'사태도 없었다. 그럼에도 '잔디 광장'을 가둔 것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다. 3일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명의로 발표된 성명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집회 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에 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4일 광장 봉쇄를 푼 직후 강희락 경찰청장은 "서울광장의 개방은 집회를 여는 시위 주최 쪽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인가에 따라 판단하겠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것 역시 무리한 주장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경찰이 특정한 '성격'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만 인정되는 특권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는 기본적 인권이다(대한민국헌법 제21조).

법치는 국민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광장은 국민들이 모여 공론을 형성하고 그것을 정치에 반영시키는 민주주의의 공간이다. 따라서 '법치'의 이름으로 광장을 가두는 것이야말로 법치에 대한 모독인 것이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되는 국민들의 요청은 국정의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만든 여의도연구소가 2일 책임당원 6천4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0.4%가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으로 국정 운영을 한다는 데 대해 '공감한다'고 답했고, 63.3%가 부유층 중심의 정책 추진을 하고 있다고 답했고, 71.5%가 정부와 청와대 인사가 편파적이라고 답했다. '굼뜬' 대학 교수들도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로부터 되돌아오는 소리는, "서울대 교수가 모두 몇 명이냐. 1천700명이 넘는 교수 가운데 시국 선언에 참여한 자들은 불과 124명 아니냐"라는 치졸한 방어 논리뿐이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손가락 크기를 재겠다고 하는 격이다.

광장을 활짝 열고 그곳에 모인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때임에도, 오히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며 광장을 가두려 하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광장은 가두고 싶다고 가둘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광장을 가두려 할수록 광장으로 모이려고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커지게 된다. 광장에 모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광장을 에워싸게 되고, 그래서 갇힌 광장 바깥의 드넓은 공간이 광장이 되게 된다.

광장을 열고 광장으로 나오라.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들의 뜻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김 창 록(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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